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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널 어떻게 하겠냐?

오늘은 유독 추운 날이다. 이런 날에는 채비가 중요하다. 어제 충전해 놓은 손난로부터 확인하고 자전거 마라톤 기념품인 복면(마스크)과 스키용 장갑까지 끼워 줘야 한 시간을 견딜 수 있다. 그리고 너무도 사랑스런 하만 카든 스피커를 핸드백처럼 들고 도서관 앞으로 나간다. 태블릿에서 KBS 라디오 앱을 켜면 클래식 FM에서는 이제후 아나운서의 “출발 FM과 함께”가 교정에 퍼진다. 이젠 열을 올리기 위해 무한 걷기가 필요하다. 아이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10분 정도 주차장을 빠르게 걷노라면 오늘도 가장 먼저 원*이네 쏘나타를 만날 수 있다. 채 잠이 덜 깬 원*이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나면 곧이어 몽*네 K8이 들어오지만 몽*는 바로 내리지 않고 한참을 정차한다. 부스스한 머리의 몽*와도 악수를 나누면 1차 에..

나의 이야기 2023.08.25

아쉬움 가득한 마지막 출근길

8월의 마지막 날이다. 오늘 가게 되는 체험학습에 대한 기대가 앞서겠지만 통학차에서 내리는 몇몇 아이들은 아쉬움 가득한 얼굴이다. 때마침 출근길 교감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 어느새 달려가 팔을 붙든다. 안 가면 안 되나요? 우리랑 같이 졸업하기로 했잖아요? 교감 선생님은 오늘을 마지막으로 내일부터는 다른 학교로 가야 한다. 교장 승진을 당연히 축하해야 하지만 아이들 마음만큼이나 나 역시 마음이 여간 심란한 것이 아니다. 교감 선생님은 우리 학교와 오랜 시간 인연을 맺은 분이다. 교사 시절 혁신학교를 운영하며 폐교 직전의 학교에서 학생을 유치해야 하는 과업(?)도 수행했고, 몸소 멀리 사는 조카를 데리고 와서 실질적인 학생수 늘리기에도 기여했다. 4년의 고된 혁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교감으로 승진하여 청산도..

나의 이야기 2023.08.25

새들의 맛집을 아시나요

심여사님은 날씨가 멀쩡한데 우산을 쓰고 등교하신다. 여사님! 뭔 일이다요? 아이고 이놈의 까치땜에 못 살것소. 사연인즉 이렇다. 여사님의 등굣길은 학교앞 벚나무 터널을 지나와야 하는데 그곳에는 사납기로 유명한 물까치들이 집을 짓고 산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진 물까치지만 떼 지어 다닐 때면 까마귀들도 줄행랑을 치는 쌈닭 중의 쌈닭이다. 이 녀석들의 둥지를 지날 때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특히 어린 새끼가 있을 때 그렇다. 인간이 나타나면 서로 간에 주의보를 발령하고 이리 저리 날뛰며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접근하는 인간은 머리를 쪼고 도망가는 물까치의 공격을 감당해야 한다. 관사에서의 아침은 너무도 일찍 깨어나는데 주로 새벽부터 일 나오는 어른들의 경운기 소리와 운동장을 휘젓는 각종 새들의..

나의 이야기 2023.08.25

혁신학교를 넘어 혁신학급으로!

4학년 역시 2주에 한 번은 수업을 하고 있으나 주로 운동장에서 이뤄져서 교실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마침 수업 공개가 있어서 뒤에 앉아 비교적 꼼꼼하게 교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교실 뒤편에 매트가 깔려 있고 편안한 소파와 쿠션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실내용 해먹, 보드게임과 그림 블록 등 놀이 도구도 잘 갖춰져 있었다. 우리 학교 에이스들의 교실답게 11살 멋쟁이 여학생들의 취향과 패션니스타 담임선생님의 센스가 잘 녹아든 교실이었다. 60년이 넘은 노후 건물은 곧 허물어질 것처럼 칠이 벗겨지고(개축이 예정되어 일체의 투자가 중지된 상태) 곳곳이 빈티 가득하지만 교실은 참 포근하고 깔끔하다. 정권과 교육감이 바뀌자 주변에서 가끔 물어본다. 혁신학교가 어찌 될 것 같냐고. 당연히 내가 어찌..

나의 이야기 2023.08.25

공간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

100년이 넘은 팽나무는 자체로 압도적이어서 우리 학교의 상징으로 삼을만 했다. 교목을 팽나무로 바꾸고 그곳을 학교의 중심으로 가꾸는 마스터 플랜도 만들어졌다. 문제는 정자였다. 2007년에 조성된 옛 정자는 나름 운치가 있었지만 아이들과 어른들은 그곳에 모이지 않았다. 평상 하나만 덩그런 정자는 늘 습했고 팽나무의 운치와 기품을 즐기기엔 많이 부족해 보였다. 정자를 철거하고 다른 시설물을 지어야 하나? 고심 끝에 이야기가 있는 시설물을 철거하기 보다는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먼저 팽나무 정자 리모델링을 알리고 디자인을 공모했다. 학생과 교직원들의 공모가 이어졌고 최종 세 편의 후보를 놓고 투표를 실시하였다. 1안은 다락이 있는 복층 정자, 2안은 벽을 세우는 오두막 카페, 3안은 정자 정비 놀이 시설 추..

나의 이야기 2023.08.25

곳곳에 아지트가 있어야 아이들이 숨을 쉰다

노고단이 잘 보이는 데크 쉼터 옆 그네 의자에 강*이가 있다. 유치원 옆 그네 의자에서도 강*이는 늘 그 자세다. 저렇게 엎드려 다리를 흔들며 책을 읽는다. 누가 지나가도 좀처럼 알지 못한다. 깊이 빠져들어 그 시간에 집중한다.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다. 쌍둥이 녀석들은 라탄 의자에서, 4학년 개구쟁이들은 확장된 정자에서, 폰을 사랑하는 두 녀석은 다락 정자에서, 2학년들은 트리하우스에서, 고학년 여학생들은 해먹에서, 댄스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데크 쉼터에서, 승*이와 원*이는 새로 생긴 연못에서 자주 논다. 자기만의 아지트다. 아지트가 모두 그럴싸하게 근사할 필요는 없다. 물웅덩이도, 그냥 쌓아진 모래더미도, 오래된 그네와 구름다리도 아지트가 된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냥 거기에 가기만 해도 편안하고 ..

나의 이야기 2023.08.25

오늘도 쏘나타는 가장 늦게까지 있습니다

저녁 7시. 여전히 흰색 쏘나타 하이브리드는 주차장에 그대로입니다. 관사로 퇴근해서 저녁 식사를 하고 산책 겸 교정을 걸을 때까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때로는 9시가 훌쩍 넘어서도 유치원 교실은 환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실루엣만 고단한 하루의 마감을 짐작할 뿐입니다. 우아하게 두 번째 하루를 시작하는 베짱이 교장의 여유가 멋쩍습니다. 누군가는 조금은 느긋한 선생님의 일처리를 두고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면 언제나 선생님이 옳습니다. (중략)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날 되시기를. 2021년 4월 22일 짱구쌤 주말에는 카톡도 좀 쉬어야지 싶어 접어 두었다가 이제야 답을 전합니다. 손편지는 감동이었습니다. 친정엄마는 늘 “보리밭 다 매고 편할 때 낳았고, ..

카테고리 없음 2023.08.25

제8회 용방 자전거 마라톤을 마치고

2021년 제7회 용방 자전거 마라톤은 잊을 수 없다. 1학년 *만이는 마라톤 도전 일주일 전까지도 자전거를 제대로 타지 못했다. 담임선생님의 특별지도는 스파르타식이어서 운동장에서 수없이 넘어지는 장면이 반복되었지만 좀처럼 실력은 늘지 않았다. 성질 급한 짱구쌤이 구원투수로 나섰지만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밑천만 드러낼 뿐이었다. 전원 도전, 전원 성공을 모토로 7년째 이어지는 우리 학교 자전거 마라톤이 위기에 처해 졌고 긴급회의가 열렸다. *만이를 위해 교감 선생님이 일대일로 붙어서 10km 자전거도로 대신 운동장을 돌기로 했다. 자전거 마라톤은 10, 20, 30, 40, 50km 코스로 나눠지는데 자기 실력껏 목표를 정하고 도전을 하는 방식이다. 섬진강을 따라 지리산을 바라보며 달리는 코스는 환상,..

나의 이야기 2023.08.25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퓨전 음악 그룹 의 음악을 좋아한다. 특별한 장르를 고집하지 않고 세계 각국의 음악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그룹이다. 국악인 김준수가 함께 참여한 를 듣노라면 그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음악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달처럼 전혀 다른 차원의 세상이다. 개인적으로 혁신학교를 두 번째 교단이라 부른다. 학교의 역할과 수업의 본질, 동료성에 기반한 집단 지성, 삶에 밀착된 융통성 있는 교육과정은 내가 꼽는 혁신학교의 특징들이다. 10년이 넘는 기간 세 곳의 혁신학교에 근무하며 더욱 성장했다고 믿는다. 저녁 6시. 두 번째 하루의 시작이다. 클래식FM 라디오에서는 늘 같은 오프닝이 나온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년째 을 진행하는 전기현씨의 감미로운 목소리다. 팝과 가요를 제외한 각국의 음악을 ..

나의 이야기 2023.08.25

임가이버가 나타났다!

침대 매트리스를 재활용해서 제작한 신기술 제품이 운동장을 말끔하게 치우고 있다. 도무지 잡히지 않던 풀들을 조기에 제거하는 최첨단 발명품이다. 오늘도 생태 텃밭에서 아이들이 분주하다. 익숙하게 빗물 저금통의 손잡이를 돌려 시원하게 나오는 물을 받아 정성스레 뿌려 준다. 파란색 물탱크는 오래된 창고의 지붕과 연결되어 빗물을 모으는 친환경 발명품이다. 빗물 저금통 2호다. 이보다 3개월 전에 이미 실에 1호를 설치했다. 노고단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데크 쉼터가 만들어졌다. 넓은 데크는 경사 지붕과 배경 디자인벽을 갖춘 노천 카페다. 캠핑 의자와 라탄 소파가 놓이고 음향 시스템까지 가능하니 여느 쉼터가 부럽지 않다. 아이들에겐 댄스 연습장과 야외 수업이, 어른들에겐 점심 시간 카페로 인기다. 팽나무 아래 오..

나의 이야기 2023.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