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곳곳에 아지트가 있어야 아이들이 숨을 쉰다

짱구쌤 2023. 8. 25. 14:06

1학년 강*이는 한동안 저 자세로 흔들 그네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짱박혀 숨을 곳이 많아야 아이들이 숨을 쉰다.

노고단이 잘 보이는 데크 쉼터 옆 그네 의자에 강*이가 있다. 유치원 옆 그네 의자에서도 강*이는 늘 그 자세다. 저렇게 엎드려 다리를 흔들며 책을 읽는다. 누가 지나가도 좀처럼 알지 못한다. 깊이 빠져들어 그 시간에 집중한다.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다. 쌍둥이 녀석들은 라탄 의자에서, 4학년 개구쟁이들은 확장된 정자에서, 폰을 사랑하는 두 녀석은 다락 정자에서, 2학년들은 트리하우스에서, 고학년 여학생들은 해먹에서, 댄스를 사랑하는 아이들은 데크 쉼터에서, *이와 원*이는 새로 생긴 연못에서 자주 논다. 자기만의 아지트다.

 

아지트가 모두 그럴싸하게 근사할 필요는 없다. 물웅덩이도, 그냥 쌓아진 모래더미도, 오래된 그네와 구름다리도 아지트가 된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냥 거기에 가기만 해도 편안하고 좋은 곳이다. 도심의 큰 학교는 공간적으로 갈등과 다툼이 자주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완충지대와 해방구가 없기 때문이다. 전면 개축 방식의 공간혁신을 추진하다 보니 굉장히 긴 준비 기간이 필요했고 그러다 보니 초기의 기대와 집중력이 조금씩 느슨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떡 하고 나타나는 근사한 멋진 건물만을 위해 그 긴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 마땅치 않았고, 그래서 우리는 곳곳을 수시로 찔끔찔끔 바꾸기로 했다. 그 과정이 재미있었고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곳곳에 아지트가 생겨나자 아이들의 새로운 모습도 함께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