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새들의 맛집을 아시나요

짱구쌤 2023. 8. 25. 14:12

이름도 어려운 피라칸사스의 빨간 열매가 나무을 가득 채우는 겨울엔 인근 새들이 모두 이곳에 다 모인 듯 소란하다. 새들의 맛집이다. 목련 열매도 못지 않다.

심여사님은 날씨가 멀쩡한데 우산을 쓰고 등교하신다. 여사님! 뭔 일이다요? 아이고 이놈의 까치땜에 못 살것소. 사연인즉 이렇다. 여사님의 등굣길은 학교앞 벚나무 터널을 지나와야 하는데 그곳에는 사납기로 유명한 물까치들이 집을 짓고 산다.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멋진 물까치지만 떼 지어 다닐 때면 까마귀들도 줄행랑을 치는 쌈닭 중의 쌈닭이다. 이 녀석들의 둥지를 지날 때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데 특히 어린 새끼가 있을 때 그렇다. 인간이 나타나면 서로 간에 주의보를 발령하고 이리 저리 날뛰며 접근을 막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접근하는 인간은 머리를 쪼고 도망가는 물까치의 공격을 감당해야 한다.

 

관사에서의 아침은 너무도 일찍 깨어나는데 주로 새벽부터 일 나오는 어른들의 경운기 소리와 운동장을 휘젓는 각종 새들의 지저귐 때문이다. 족히 10여 종은 넘어 보이는 이들 새들은 종족별로 운동장을 분할하여 다투지 않고 무언가를 쪼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비가 와서 물웅덩이라도 있으면 깃을 씻고 단장하는 새들의 아름다운 몸짓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사에서 아침을 맞는 특권이다.

 

지금은 이순신 동상 앞으로 옮겨간 피라칸사스는 참 멋진 나무다. 특히 겨우내 달려 있는 빨간색 열매는 너무도 풍성하고 선명해서 멀리서 지나가던 사람들도 꼭 교정에 들어와 무슨 꽃이냐고 물어보곤 한다. 사람들에게만 좋아보이는 것은 없나보다. 새들은 모두 예외 없이 이 나무 열매를 사랑하여 겨우내 수많은 새들의 핫플이 된다. 처음에는 가지가 보이지 않을 만큼 많이 달린 빨간 열매가 한 달 쯤 지나면 서서히 듬성듬성하더니 어느덧 1월이 채 가기 전 한 개도 남김없이 탈탈 털린다. 성질 급한 새들은 이 맛있는 먹이를 빨리 먹으려고 돌진하다 유리창에 비친 그곳에 부딪혀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교장실에서 가끔 듣게 되는 그들의 비명횡사는 여간 격렬한 게 아니어서 급기야 유리창에 새들을 보호할 맹금류 스티커 사진을 붙이기까지 했다. 이제는 너른 충무공 앞으로 옮겨 그 우우하고 비싼 자태를 맘껏 뽐낼 터이니 올 겨울에는 한 놈의 희생도 없이 모두가 행복한 겨울 먹이장이 될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목련 씨앗도 새들이 좋아하는 먹이다. 삼십여 그루에 달하는 목련 나무는 그 꽃이 좀 작고 오래가는 것이어서 봄철 만개할 때 인스타의 여러 스타들이 사진기를 들고 찾아온다. 무화과, 단감, 꽃사과, 석류, 비파, 산수유, 매실 등 학교 곳곳에는 갖가지 과실수가 무농약과 무관심으로 키워져 온갖 새들에게 맘껏 나눠지고 있다. 학교가 아이들만 키우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