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02

[용방이야기11] 할머니 주름살이 좋아요

“내 인생 최고의 장면은 바닷가 소풍이란다.” 이탈리아의 어느 바닷가에서 여름밤을 함께 보낸 그때의 10대 친구들은 모두 할머니가 되었을 것이다. 현재는 남루했고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두려웠지만 싱그러운 청춘들은 함께 웃을 수 있어 견딜 만했다.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생신날, 주름살이 궁금한 손녀에게 인생 최고의 날들을 이야기하는 여든 할머니는 아름답다.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딸을 낳은 날, 딸이 결혼한 날 등 웃음과 행복 가득한 날에 생긴 주름살이 부끄럽지 않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도 있지만 읽는 내가 더 좋아하는 그림책들도 있다. 이 책이 그랬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물어봤다. 네 최고의 날은 언제였어? 생일날, 자전거 생긴 날, 동생 태어난 날, 해외여행 간 날, 워터파크 놀러 간 날, 첫..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10] 용방에서 한솥밥 먹고 헤어진 19명 선생님께

3월 2일, 반가운 만남이 있으면 아쉬운 헤어짐도 있는 법, 4년여 그간 19명의 직원들과 작별을 했다.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 6개월까지 한솥밥을 먹었으니 우린 식구와 다름없다. 네 분이 정년 퇴임을 했고, 한 분이 교장 승진을, 두 분이 이곳에서 결혼을 했으니 좋은 터는 분명하다. 이지○ 행정사님, 김누○ 선생님, 김대○ 선생님, 김효○ 선생님, 구효○ 선생님, 송경○ 선생님, 변현○ 선생님, 이나○ 선생님, 임영○ 실장님, 이태○ 실장님, 홍승○ 실장님, 서미○ 실장님, 남규○ 주무관님, 심학○ 여사님, 이지○ 선생님, 최지○ 행정사님, 김고○ 주무관님, 이소○ 주무관님, 염정○ 조리사님. 언약은 강물처럼 흘러가겠지만 만남이 꽃처럼 피어나길 바라며 그리운 이름들을 불러본다. 가장 최근에 헤어..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9] 나도 빨리 좋은 형이 되고 싶어요

“도*아! 이리 와, 형이랑 같이 가자!” “그래. 형” 입학하고 10일이 지난 아침 시간, 에듀버스에서 내린 도*이는 아직도 등교가 버겁다. 엄마와 헤어져 혼자 타는 버스도 그렇고, 누나 시*이는 1학년 적응하느라 동생 챙겨주기엔 무리다. 그런데 오늘은 같은 유치원 후*이형이 손을 잡아 준다. 사실 입학식 때 보았던 도*이는 걱정이 많았다. 잠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두고 돌아서려는 엄마의 마음도 그랬을 것이다. 같은 유치원 아이들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후*이는 늘 동생들에게 다정하게 대한다. 처음 유치원에 와서 엄마와 잘 떨어지지 못하는 동생을 보니 안쓰러웠던지 아침 등교 시간 이렇게 손을 잡고 유치원에 간다. 이곳 용방을 포함해서 혁신학교는 3번째다. 혁신학교 교육과정을 이야기할 때 빠지..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8] 잉어 훔쳐 간 사람을 그냥, 어! 전부 숨어 있네^^

“지난 4년간 학교 물건 잃어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학교에 오면 누구나 착해지나 봐요~” 정말 그랬다. 새로 만든 데크 쉼터나 복층 정자에 멋진 캠핑용 의자, 빈백, 체스, 만화책 등을 두어도 누구 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였다. 봄철 별목련꽃이 흐드러져서 주말이면 백여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학교를 자랑할 일이 생기면 단골 레퍼토리로 빠지지 않는 것이 ‘높은 시민 의식’이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개학을 앞두고 새로 조성한 생태연못에 아이들을 놀라게 할 비단잉어를 들였는데 월요일에 출근해 보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들여놓은 지 3일도 안 된 생물을. CCTV를 돌려봐도 의심할 만한 점이 없자, 급기야는 지능범의 소행..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7] 언제나 빛나는 당신입니다^^ 그런데 어디에 있나요?

교직원 다모임의 첫 순서는 한 달간 생활한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방학하자마자 일을 해치우고 제주도로 갔습니다만 그날부터 태풍이 불어 연수 내내 바람과 함께 했습니다. 제주도 분들은 이 정도 바람은 아무것도 아니라네요. 오늘 할 일도 내일로 미루자라며 좀 쉬었더니 3주가 흘러갔더라구요. 정신 차려 원격연수 받고 성적 처리했더니 개학이네요. 방학 때 아이가 전지훈련을 가서 편했는데 이번에는 집에 있어서 내내 아이들 수발하느라 힘들었습니다. 저는 출근 체질인가 봐요. 출근하니 생기가 도네요. 노고단에 올라갔어요. 여름엔 처음이었는데 푸른 하늘, 탁 트인 시야. 멋진 풍경이었어요. 한 번들 가보세요. 베트남 다녀와서 좀 쉬었다가 근무하고 마지막 한 주를 푹 쉬었어요. 넷플릭스로 애니메이션을 보았는데 ..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6] 짱구쌤 이번주에는 뭐해요?

늘 하던 운동장 짱구쌤 수업을 정자에서 한다고 하니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2학년의 1/3이 코로나 등 여러 사정으로 등교를 못했으니 팀으로 나눠 하던 놀이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 그림책 읽기 수업으로 바꿔서 생긴 일이다. 피가 끓는 9살 청춘들에게 앉아서 하는 수업은 고욕이겠으나 [알사탕]의 마법을 믿어보는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그림책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내 책 속으로 빨려들어 올 것 같은 몰입이 시작된다. 그림책의 힘이다. 그림책은 학년을 가리지 않는다. 유치원 꼬맹이들부터 13살 애어른들까지 집중력 최고를 자랑한다. ‘누구라도 교장실’에 쌓여있는 그림책들은 최소 서너 번씩은 읽었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늘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사실 짱구쌤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걱정이 많았다. 호기롭게 약..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5] 선생님들의 변함없는 열정과 사랑을 한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선생님들의 변함없는 열정과 사랑을 한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회에서 교문 앞에 내건 현수막 문구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하는 마음과 함께 따뜻한 용방교육공동체에 대한 바람도 담겨있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7월에 처음 사건이 알려질 땐 공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가고 그 뙤약볕에 수천, 수만의 교사가 광장에 모일 때조차 남의 일처럼 불구경이었다. 하지만 교실의 선생님들은 달랐다. 2년 차 청년 교사의 꿈과 절망에 공감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갔고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수십만의 기록적인 추모 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그런 일 없으니까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동안에도 이곳저곳에서 절망을 선택하는 교사들은 속출했고, 나 같은 무관심이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4] 선생님! OO이에요 오랜만에 연락 드려요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죠? 용방에서의 마지막 학기, 아쉬움 없게 잘 보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학교는 공사가 한창이려나요? 용방초도, 구례도, 짱구쌤도 보고싶습니다! 짱구반 한 명 꼬셔서 쌤이 용방에 계실 때 한 번 거 가볼까요? 쌤 부산도 오셔야죠! 요즘 파죽지세 기아! (9월 6일 밤. 광안리 ○○드림) 이번에도 구호물품 수준의 보따리가 도착했다. 수신자의 낡아짐을 애써 막아보려는 듯 여러 종류의 책들과 정성 가득한 손 편지다. 발신자는 2006년 영암초 제자, 제자는 늘 선생보다 의젓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고, 뻔한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세상 중요한 가치를 찾고자 했다. 상당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제자와 나는 공유하는 점이 많은데, 나의 속없음과 제자의 속깊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3] 레이서? 베스트 드라이버? 아니고요, 연비왕^^

드디어 마의 24km를 넘었다. 2년 전쯤 딱 한 번 25를 찍은 후엔 좀처럼 다다를 수 없는 벽이었는데 오늘 벼락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을 애써 자제했고 관성을 최대한 이용하려 애쓴 것이 주효했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줄이고 내리막길에서는 가능하면 페달에서 발을 떼는 습관은 오랫동안 몸에 익은 터라 그리 어렵진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빨리 가려는 본성 또한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운전 경력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운전은 쉽지 않다. 한때는 앞서가는 차를 용납할 수 없었던 레이서임을 자랑할 때도 있었는데 뒤따라 청구되는 과속 딱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규정 속도만 지키자는 베스트 드라이버 시절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13년 25만 킬로미터를 탄 경유 SUV ..

나의 이야기 2024.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