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4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11년 전 이곳에서 3학년 담임을 했었다. 2년의 교육청 파견, 4년의 공모 교장을 거쳐 6년 만에 돌아온 교실은 친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교장을 하면서도 주당 4시간 정도의 수업은 해왔던 터이지만 한 번씩 들어오는 선생과 종일 씨름해야 하는 담임은 완전히 달랐다. 3개월이 지나니 낯섦은 희미해졌지만 힘듦만은 여전히 굳건하다. 저자는 뉴욕의 전도유망한 잡지사에서 일하다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으로 직장을 옮긴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기 싫었고 그냥 자리에 머무르고 싶었다. 오래전 가족들과 찾았던 메트의 기억을 떠올렸고 별 고민 없이 그곳의 경비원이 되었다.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것만 모이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명작과 사람들을 만나 10년을 보낸다. 행복한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전직이라는 방아쇠..

책이야기 2024.06.13

인생은 너무도 느리고 희망은 너무도 난폭해

프랑스 문학의 앙팡 테리블 「브람스를 아세요」, 「슬픔이여 안녕」을 쓴 프랑수아즈 사강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은 ‘매혹적인 작은 악마’다. 신경 쇠약, 수면제 복용, 정신병동 입원, 마약 복용, 그리고 노년의 파산. 20살 즈음에 얻은 명성과 부를 평생 유지하기엔 그녀는 너무 어렸고 열정적이었다. 누구나 그렇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아직도 많이 인용되는 그녀의 명언(?)이다. 이 책은 갑작스러운 명성에, 유럽과 미국, 전 세계로 이어지는 강연과 초청, 연일 이어지는 파티와 여행 중 그녀다움을 붙잡고 싶어, 친구인 베로니크에게 보낸 편지 모음집이다. 그러니까 빨리 편지해 줘, 최대한 길게 답장해 줘 모두 서른아홉 통의 편지글이다. 서로를 플릭, 플록으로 부르며 써 내려간 편지..

책이야기 2024.02.21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무해한 사람들, 선한 사람들 언제 회신될지 모를 신호를 우주에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는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과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 자연 그리고 우주를 동경한다. (작가의 말 중) 정말 혜성같이 등장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저자 심채경은 행성과학자다. 목성, 토성, 수성, 타이탄을 거쳐 지금은 달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의 천문학자는 하늘보다는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정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과학 저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주를 연구하고 사랑하는 ‘무해한 사람들’이란 말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나와의 공통점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분야라 더 신기했다. 언젠가는 터트릴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아이들의 오늘을 사랑하고..

책이야기 2023.10.25

버티는 것과 견디며 나아가는 것

노벨문학상 2023년 노벨문학상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받았다. 매번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데 나에겐 ‘듣보작’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노벨상을 주는 건지 따지고 싶은 마음과 적어도 노벨문학상 작품 정도는 읽어야지 하는 부러움에 곧바로 책을 구입했다. 작가 정여울의 추천사처럼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핏 이해가 될 듯도 싶다. 등장인물들의 짧은 대화에는 늘 침묵이 놓여진다. 독자는 그 사이에서 숨죽여 다음 대화를 기다린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글의 힘이다. 노르웨이 어느 섬에 사는 평범한 어부 요한네스가 생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책이야기 2023.10.15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장하준 / 부·키] 편견 넘어서기 전라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 아이들은 잘해주면 기어 오른다 이슬람교는 배타적이다 지금껏 사실인 것처럼 들어온 말들이다. 직관적으로도 거부 반응이 있었지만 경험하고 공부할수록 더더욱 편견에 사로잡힌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전라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특정 지역을 폄훼하기 위한 악의적인 선동이니 논외로 치고, ‘아이들은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는 교육을 일방적인 훈육으로만 여기던 것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시각이다. 아이들은 존중받을수록 스스로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편견을 파헤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 코코넛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책이야기 2023.09.11

너를 만나기 위해 공룡이 다 멸종했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김상욱 / 바다출판사] 건축가 유현준의 “건축가가 본 교육은, 역사는, 사회는?” 이런 표현이 멋져 보였다. 획일화된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과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그의 결론은 그래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세상은 무채색의 평면에서 다양성을 가진 입체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물리학자다. 그것도 인문학 소양을 풍부하게 갖춘 친절한 과학자다. 그런 그가 원자에서 인간까지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고 하기에 주저 없이 주문한 책이다. 상당한 수의 과학책을 구입해서 읽었지만 난 아직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으니 설명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책이야기 2023.08.17

모든 삶은 흐른다

철학책이 자기계발서를 자처하면 [모든 삶은 흐른다 / 로랑스 드빌레르 / FIKA] 도열한 추천인들 Hooked on classics는 로얄필이 클래식 입문자를 위해 내놓은 메들리 앨범이다. 내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은 이 앨범을 감상 시험의 교재로 사용했고 덕분에 충장로 레코드샵에서 구입해서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로얄필이나 음악 선생님의 의도는 선한 것이어서 나 같은 음악 문외한에게 클래식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지만, 반대 급부도 만만치 않아서 클래식의 깊이보다는 익숙한 크라이막스만 들으려는 얇은 귀를 양산하기도 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추천인이 책의 머리를 장식할 때 알아보아야 했지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철학책을 선택한다면?” 등의 카피에 훅한 내 얄팍함을 탓해야 한다..

책이야기 2023.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