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02

편 나눠 경쟁하기 싫어요

“저는 이런 놀이 싫어해요. 왜 편을 나눠서 경쟁해요.” 1학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딱히 반박할 수는 없어서 “이기지 않아도 돼. 그냥 놀면서 하자.”로 얼버무렸다. **이가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열심히 재미있게 참여했었는데, 좀 전에 했던 삼팔선과 달리 신체 접촉이 빈번해 지면서 죽는 횟수가 늘어나자 나온 반응이었다. 그렇다. 모두가 좋아하는 삼팔선 놀이는 닿기만 해도 목숨이 결정되는 단순한 경기 규칙 때문에 체격, 근력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해바라기는 차원이 다른 놀이다. 전래 놀이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오징어 놀이의 원형 쯤 되는 이 경기는 처음으로 신체 접촉이 허용되며 밀고 당기고를 통해 작은 부상 위험을 감수한다. 심판의 영이 서지 않으면 곧바로 벤치 클리어링..

나의 이야기 2023.08.25

맨발로 운동장을 걸어본 적 있나요?

장마가 길어지니 짱구쌤 수업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도 나도 운동장 놀이 수업이 좋은데 맨날 비가 오니 고민이 많다. 책 읽어주는 것도, 계기 수업하는 것도 나름 좋지만 이미 놀이 수업에 맛을 들인 녀석들의 반응은 온도차가 심하다. 뭘 해도 “언제 운동장 나가나요?”로 토를 단다. 그래서 이번 주는 아예 운동장에서 비를 맞는 수업을 작정하고 시작한다. 그림책을 한 권 읽어주니 예상했던 대로 “오늘도 운동장 안 나가요?”를 합창한다. “자, 양말을 벗고 우산 쓰고 맨발로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우레탄 놀이터를 지날 때 빗줄기가 거세진다. 도서관 시멘트 주차장과 지킴이 부스를 지나 새로 만든 잔디밭에 올라선다. 탄성이 터진다. “폭신폭신해요. 간지러워요.” 나무 데크에서 숨을 한 번 고른 후 본격적인 운동장 ..

나의 이야기 2023.08.25

우리 모두에겐 우물가 유전자가 있다

“나한테는 독서하라고 하지만 안방에서 맨날 핸드폰으로 드라마 보는 것은 엄마야.” “우리 아빠는 내가 아직도 아기인 줄 아나 봐. 시도 때도 없이 뽀뽀해주래.” 성*이는 과묵하고 작게 웃는 미소가 매력적인 아이지만 수돗가에서 빨래터가 열리면 누구보다 수다 많은 아이로 변한다. 성*이만 그런 게 아니라 운동화 솔을 들고 있는 모두가 그랬다. 이쯤 되면 수천 년 내려온 우물가 유전자가 한국인 모두에 깊이 간직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짱구쌤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이들 사이에서 묵은 때 가득한 실내화를 빨고 있노라면 이야기 판에서 나올 생각이 없다. 덕분에 아이들과 친해지고 덤으로 운동화는 새 빛을 발한다. 초등 보통교육을 받은 아이가 스스로 자기 실내화를 빨지 못한다? 6학년이 구례에서 광주에 있는 외할머..

나의 이야기 2023.08.25

국수는 승소(僧笑), 아니 짱소!

“교장샘!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국수 다 불겠네.” 조리사님이 교무실에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찾았다는데 난 그때 목공실에서 나름 바빴다. 매일 같은 시각에 점심을 먹는데 오늘 유독 애타게 찾은 이유는 국수 때문이다. 워낙 국수를 좋아하기에 메뉴에 그것이 보이면 배식하는 내내 큰 소리로 떠들어대니 급식실 식구 모두 짱구쌤의 국수 사랑을 모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워넌히 비교될 만큼 많은 양의 국수를 담아주면서 부족하면 얼른 오라는 당부도 덧붙인다. 절집에서 국수가 나오는 날은 그 점잖은 스님들도 싱글벙글이란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매일 같은 일과 비슷한 음식이 수행으로 반복되는 곳에서 국수와 같은 변주는 일상에 생기를 불어 넣는 작은 이벤트가 되고도 남는다. 그래서 국수를 스님(僧)들을..

나의 이야기 2023.08.25

시골 학교 기간제 교장, 짱구쌤의 일

“저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장입니다!”, “와!” 함께 자리한 교장 선생님들의 환호가 뜻밖이었다. 정규직 교장의 안도였는지, 제 위치를 알고 있는 이에 대한 위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구례 시골학교에서 일하는 3년 차 내부형 공모 교장이다. 교감을 거치지 않고 공모 절차를 통해 교사에서 곧바로 교장이 된 이른바 ‘무자격 교장’이다. ‘내부형 공모 교장’은 기존의 승진 체제(교사-교감-교장)의 변화를 위해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에게도 교장공모의 기회를 주는 제도로, 학교 현장의 호응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10여 년째 시행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 구축을 통해 민주적인 학교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무자격 교장의 양산’, ‘승진 구조의 와해’, ‘특정 교원단체의 전유물’ 등의 비판도 이어지..

나의 이야기 2023.08.25

코로나, 지금은 □□하기 딱 좋은 때!

‘흑사병, 마마 창궐’ 등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전염병 사태가 2020년 우리 사회를 덮쳤다. 교육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개학 3주 연기와 휴업, 긴급 돌봄, 아이들 없는 3월 등 전례 없던 일들의 연속이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일들이기에 학교는 혼란 속에서 그 여파를 따지며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중이다. 하지만 전시에도 학교는 열렸었고, 둘째가라면 서러울 교육열과 상상력을 지닌 우리가 이 시기를 그냥 무기력하게 넘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신종 코로나19가 우리 사회에 어두운 그림자만 드리우고 있는 걸까? 모든 일에는 명암이 있게 마련인데, 정녕 그림자만 있고 빛은 없단 말인가? 그림자야 연일 언론과 SNS에서 활개를 치고 있으니 따로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듯하고(해외 언론의 평가와는 사뭇 다른), 개인적으..

나의 이야기 2023.08.25

핀란드는 그만, 이제부턴 용방 가자!

우리의 꿈은 비슷했다. 세상에 없던 학교를 만들어 보자는 것. 긴 복도와 같은 규격의 교실, 넓은 운동장과 직육면체의 외관을 갖춘, 교도소, 병원과 별 구분이 안 되는 관리 중심형 학교를 지양하자고 했다.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집과 같이 편안한 곳, 배움과 쉼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2년 반 동안 사용자 참여 설계를 통해 그 꿈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한다. 우선 한 건물에 모든 교실을 집어넣지 않는다. 학년 군별로 독립 주택을 만들고 그것을 [배움의 집]이라 부른다. 가령 1, 2학년이 쓰는 배움의 집 1호에는 1학년과 2학년 교실이 운동장 쪽으로 위치하며, 공동으로 사용하는 학급 거실을 둔다. 거실에는 일반 가정집처럼 간이주방과 화장실, 안락한 소파가 있다. 중목구조의 목조주택이고..

나의 이야기 2023.08.25

세상에 없던 학교가 나타났다!

학교 건물은 저층화 되고 분절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람 몸의 50배 정도 크기의 주택 같은 교사가 여러 채 있고 그 앞에 다양한 모양의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커야 한다. 그래서 1학년 때는 삼각형 모양의 마당에서 놀다가, 2학년이 되면 연못 있는 마당에서 놀고, 3학년이 되면 빨간색 경사 지붕이 있는 교실 앞마당에서 놀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 아이들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정상적인 인격으로 클 수 있을 것이다. [어디서 살 것인가/유현준] 희망을 쏘아 올린 [전남혁신학교] 본교는 섬진강과 지리산을 배경으로 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그 곳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은 수많은 마을(마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일가를 이루었으나 이제는 위태롭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과 5, 6년 전만..

나의 이야기 2023.08.25

어깨동무, 옆반샘이 좋아요^^

교장선생님^^ 단비 촉촉히 내리는 날, 옆반 샘과 다음주 수요일 교장샘과의 만남에 설레며 이야기 나누다 메시지 보냅니다. 어깨동무 옆반 샘들의 소중함이 더욱더 커지고 깊어지는 지산초랍니다. 오시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길 기다립니다. 이번 주 목요일 아이들이 옆반 동생들을 초대하여 우리가 만든 5.18책을 소개하는 수업나눔을 하기로 했는데, 이것 또한 어깨동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잔잔한 웃음과 평안으로 힘내시길 기도합니다. 2022년 6월 14일 울샘 이** 올림♡ 광주지산초 울샘이 보내준 책갈피는 나도 정말 좋아하는 [리디아의 정원]의 한 구절이 쓰여있다. 어느 곳이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한 사람만 있으면 그곳은 이미 희망적이다. 아이들에게 편지글이 대부분인 이 책을 읽어줄 때면 가슴 저 깊은 곳에..

나의 이야기 2023.08.25

하나를 하더라도 야무지게 뽈깡

어느 날 일제히 학교의 휴지통이 세면대에서 사라졌다. 노여사님의 수고로 깨끗하게 씻겨진 휴지통은 창고로 직행하고 일회용 티슈도 함께 철거되었다. 플라스틱과 생수병 없는 학교로 지정된 후, 한 걸음 더 나아가 일회용품으로 확대해서 실천하자는 용방 가족들의 결의이기도 했다. 모든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개인용 수건(요일별로)이 지급되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잘 실천되고 있다. 사실 우리 학교는 부임하기 전부터 일회용품 사용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었다. 종이컵과 나무 젓가락 등 일회성 용품들은 애초부터 찾기 어려웠고, 아이들 어른 할 것 없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관건은 지속성. 사실 학교는 대부분 생태교육을 슬로건으로 걸고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생태 텃밭 가꾸기, 에너지 절약하기, 일회용품 쓰지..

나의 이야기 2023.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