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맨발로 운동장을 걸어본 적 있나요?

짱구쌤 2023. 8. 25. 14:49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어느새 빗속의 아이들이 되었다. 마스크로도 숨길 수 없는 행복감이 가득하다.

장마가 길어지니 짱구쌤 수업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도 나도 운동장 놀이 수업이 좋은데 맨날 비가 오니 고민이 많다. 책 읽어주는 것도, 계기 수업하는 것도 나름 좋지만 이미 놀이 수업에 맛을 들인 녀석들의 반응은 온도차가 심하다. 뭘 해도 언제 운동장 나가나요?”로 토를 단다. 그래서 이번 주는 아예 운동장에서 비를 맞는 수업을 작정하고 시작한다. 그림책을 한 권 읽어주니 예상했던 대로 오늘도 운동장 안 나가요?”를 합창한다. “, 양말을 벗고 우산 쓰고 맨발로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우레탄 놀이터를 지날 때 빗줄기가 거세진다. 도서관 시멘트 주차장과 지킴이 부스를 지나 새로 만든 잔디밭에 올라선다. 탄성이 터진다. “폭신폭신해요. 간지러워요.” 나무 데크에서 숨을 한 번 고른 후 본격적인 운동장 코스로 들어선다. 군데군데 웅덩이를 훑고 모래 언덕을 걸으면 아이들의 신경이 온통 발로 집중된다. 진흙밭과 모래는 감촉부터 다르다. 부드러운 진흙이 발가락 사이를 빠져나올 때, 모래가 물과 함께 발바닥을 간지럽힐 때, 때마침 빗줄기가 거세지고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는 발걸음에 리듬감을 부여한다. 신발에서 해방된 발들이 처음으로 주인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순간이다. 25분간의 빗길 산책이 끝나고 수돗가에서 발 샤워를 마치면, 아직 남아있는 촉감들의 후일담이 교실로 이어진다. 우리 교육과정이 닿()고 싶은 감수성이다. 바람이 거센 날, 바람이 간지러운 날, 눈보라가 지리산을 가리는 날, 안개비가 막막한 날, 햇살이 정수리에 붙는 날, 온통 새소리뿐인 날이 날마다 널려있다.

 

맨발로 운동장을 걸어본 적 있나요? 없으면 말을 마세요. 얼마나 재밌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