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102

[용방이야기02] 가장 아름다운 학교 풍경, 동행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울리고 유치원 선생님의 아침 맨발 걷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지*이가 동행한다. 에듀 택시로 일찍 등교한 지*이가 며칠 전부터 운동장을 걷더니 요즘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짱구쌤! 안녕하세요^^” 아이와 선생님이 함께 걷는 모습은 학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장을 찾는 맨발들이 늘어나고 있다. 운동장이 잘 정비된 학교로 입소문을 탄 후 조용히 걷기 애호가들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칭 ‘맨발걷기족’의 숫자가 이젠 제법이다. 아침, 점심시간, 퇴근 후 각자 적당한 시간을 내어 걷고 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멀리 노고단을 두고 걷는 모습은 참 여유롭다. 우리 학교는 기획 회의가 없다. 작은 학교에서도 관례처럼 행해..

나의 이야기 2024.01.28

더 나은 선생이 되어야 한다

유독 착한 아이들이 모인 곳, 용방 지난해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장실을 찾아온 지*이가 건네준 상장이다. 다소 엄숙한 표정으로 상문을 읽고 정중하게 상장을 전달한 후 쿨하게 가버린다. 매일 아침 두 형제가 아빠 차에서 내려 쌍둥이처럼 장난치며 뛰어가는 모습은 언제나 정겨웠는데 올봄 갑작스러운 전학 소식에 많이 서운했다. 가장 잘 보이는 교장실 벽면에 걸어놓고 매일 이 상장을 읽으며 다짐한다. ‘그래, 난 친절한 교장이야.’ 외부에서 우리 학교를 찾은 강사분들은 하나같이 우리 아이들의 순수함과 열의를 칭찬한다. 여느 초등학생들과는 달리 잘 집중하고, 감탄한다는 것이다. 모지리 교장이라 흉볼까봐 우리 아이들 자랑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보기 드물게 착한 아이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용방 최고의 자랑은 열정..

나의 이야기 2023.12.28

대처에 나다니지 않고

먼저 영예의 전남교육상을 받게 되어 영광입니다. 수많은 훌륭한 선후배 교원들이 계실진데, 미력한 제가 이 상을 받아도 되는 건지 걱정도 앞섭니다. 30년 넘게 농어촌의 작은 학교와 교실을 지키며 전라도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라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합니다. 저를 짱구쌤이라 부르며 함께 그 시간을 건넜던 456명의 아이들과, 8개 학교에서 부족한 저를 성장시켜 주셨던 동료들께 고마움을 전합니다. 특히 세상에 없던 학교를 꿈꾸며 지난 4년간 함께 분투한 용방교육가족들께 감사드립니다. 하나같이 No.1을 추구하는 가망없는 질주의 시대에, 모두가 저마다의 빛깔로 아름다운 only 1이 되는 전남의 학교를 꿈꿉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1992년 첫발령지 소안국민학교의 작은 ..

나의 이야기 2023.12.11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만 하잖아요?

“짱구쌤, **이 누나가 막 욕해요.” 2학년 꼬마가 불쑥 교장실에 들어와 하소연이다. 도서관으로 달려가니 노란 매트를 차지한 **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보고 있다. “**아! 동생들한테 욕하면 쓰나? 좋게 말해라.” “네” 교장실로 돌아와 앉기도 전에 그 2학년 꼬마가 다시 달려온다. 또 누나가 욕한다는 말에 이번엔 큰소리가 나간다. “교장실로 와! 교장실에 온 **이가 묻는다. “얼마나 있어야 해요?” “10분” 교장실에서 잠시 앉아 있던 **이는 결재를 위해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이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보니 천연덕스럽게 그 너란 매트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아, 교장실로 다시 와!” “왜요? 아무 말도 안하면서” “교장실에 가서 말하자.” “여기서 하세요. 잘 알지..

나의 이야기 2023.10.19

구례 제일의 택배 사장님이 되기를 (78회 졸업식)

유래 없는 추위가 한창인 가운데 그나마 어제와 오늘은 견딜만한 겨울입니다. 먼저 빛나는 졸업장을 받은 자랑스러운 78회 용방초 9명의 졸업생들께 축하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들의 지난날을 격려하고 앞날에 축복을 건네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하신 학부모님과 가족분들, 재학생과 교직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항상 친절한 말투로 멋지게 생활하는 승○아! 정직하고 부지런한 부모님들처럼 다른 사람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하는 구례 제일의 택배사장님이 되길 바란다. 우리 학교 최고의 댄서 지○아! 네 멋진 춤 실력이 한동안 그리울 거야. 꿈과 희망을 짓는 씩씩하고 듬직한 중장비 사장님이 되어 우리 고장과 가정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렴. 나중에 우리 학교에 중장비 가져와서 쉼터도 만들어주고. 예의 바..

나의 이야기 2023.08.26

숫자로 하는 2022년 짱구쌤 자기 평가

178 아침맞이 일수. 학교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블루투스 스피커와 하이파이브로도 충분하다. 1120 짱구쌤과 차마시기 연 인원. 화요일부터 금요일 10시 30분부터 40분까지 사전 예약을 받아 운영했다. 똘감잎, 보이, 히비스커스, 모과, 냉매실, 복숭아 아이스, 레몬에이드, 냉꽃사과 등 등. 노쇼를 하는 학년이 종종 있다. 411 발송 우표수. 용방살이와 손편지를 보내려 용방 우체국에 간다. 봉투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을 때까지 그 사람을 생각한다. 10 수업 에세이 편 수. 수업 공개, 수업 나눔, 뒷풀이, 수업에세이는 교실에 건네는 연애편지다. 출장, 건망증을 핑계로 많이 빼먹었다. 이 세상 좋은 수업의 수는 모든 선생님의 수와 같다. 140 짱구쌤 수업 시수. 유치원은 3..

나의 이야기 2023.08.26

더 나은 이장규가 되겠습니다

예기치 못한 긴장 속에 부임한 첫날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가 펼쳐졌습니다. 아이들 없는 학교에서 교장으로 한 첫 번째 일은 ‘결재 놀이?’였습니다. 다행히 함께 힘을 모으니 학습 꾸러미 전달이나 온라인 입학식, 칸막이 급식실 같은 혁신 아이디어도 나오더군요. 교장으로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책 읽어주기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했고, 수면 아래 서툰 발버둥은 코로나로 간신히 감추어졌습니다. 뿌듯함과 아쉬움 아이들이 학교에 나오니 예전의 교사 본능이 살아나고, 아침맞이나 수업을 하면서 서서히 용방에 스며드는 기분이 들어 안도했습니다. 책임감 넘치는 용방 가족들 덕분에 초유의 위기 상황도 어렵지 않게 넘을 수 있었습니다. 자격연수로 오랜 공백 중에 들른 자전거 마라톤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늘은 맑고..

나의 이야기 2023.08.26

어렸을 땐 외갓집, 커서는 처갓집, 학교에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딱 그런 격이다.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되건만 이럴 땐 늘 안 보인다. 할 수 없이 처갓집 한 보따리는 부부가 옮겨야 한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치와 쌀을 비롯한 기본 식량은 모두 처갓집에서 나온다. 오랜만에 영암에서 가족들을 만나 김장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울, 광주, 순천의 네 딸들은 각자의 집으로 가져갈 친정 엄마의 정성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나를 포함한 사위들은 “어렸을 때는 외갓집 것을 먹고, 커서는 처갓집 것을 먹어야 한다.”는 오랜 어른들의 말씀이 딱 맞다며 서둘러 짐을 꾸려 각자의 집으로 출발한다. 유난히 쿵짝이 잘 맞는 처갓집 식구들과 지난해 추석을 우리 학교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집에서 치루는 명절은 온전히 장모님 몫이어서 집..

나의 이야기 2023.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