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시골 학교 기간제 교장, 짱구쌤의 일

짱구쌤 2023. 8. 25. 14:44

새로 만들어질 학교 주출입구. 세련되면서 정감 있는 첫인상이길 바란다.

저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장입니다!”, “!” 함께 자리한 교장 선생님들의 환호가 뜻밖이었다. 정규직 교장의 안도였는지, 제 위치를 알고 있는 이에 대한 위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구례 시골학교에서 일하는 3년 차 내부형 공모 교장이다. 교감을 거치지 않고 공모 절차를 통해 교사에서 곧바로 교장이 된 이른바 무자격 교장이다. ‘내부형 공모 교장은 기존의 승진 체제(교사-교감-교장)의 변화를 위해 교장 자격증이 없는 교사에게도 교장공모의 기회를 주는 제도로, 학교 현장의 호응과 비판을 동시에 받으며 10여 년째 시행되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 구축을 통해 민주적인 학교문화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무자격 교장의 양산’, ‘승진 구조의 와해’, ‘특정 교원단체의 전유물등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남은 전체학교의 2% 정도 시행되고 있다.

 

? 오늘 표정이 안 좋네. 숙제 안 했니? 걱정하지 마, 선생님이 설마 어떻게 하겠냐? 그리고 급식이 마라탕이야!” 아침 교문 맞이, 기간제 교장이 하루 일을 시작한다. 첫 통학차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클래식 FM 라디오가 나오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켜고 교문에서 아이들을 기다린다. 요즘 같은 칼바람의 겨울맞이를 하기 위해서는 눈만 빼꼼한 중무장에 쉼 없이 걷기를 반복하며 체온을 올리는 게 상책이다. 70여 명의 아이들이 다 등교할 때까지 손바닥을 마주치며 매일 아침맞이를 하는 것은, 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어야 한다는 오랜 바람의 실천이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교장을 짱구쌤이라 부른다. 그렇게 부르면 교장의 권위는 사라지고 아이들은 버릇없어질 거라는 어른들의 기우는 접어야 한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사리 분별을 잘한다. 이름과 외모에서 나온 짱구쌤별명은 아이들과 거리를 가깝게 하는 마법의 힘이 있다. 2교시가 끝나면 누구나 교장실에서 예약한 아이들과 우아하게 차를 마신다. 남자친구, 케이팝, 수업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지는 동안 난 그냥 차를 대접하며 웃어주면 된다. “짱구쌤, 오늘은 무슨 차에요. 김칫국물 맛이 나네요.”, “보이차야.”, “그럼 남자만 먹어요?”

 

일주일에 네 시간 정도 수업을 한다. 30년간 해오던 일이 수업이었으니 멈출 이유는 없었다. 교과와 시간을 담임선생님과 협의하고 체육, 국어, 실과, 창체 등 다양한 수업을 진행한다. 놀이, 실내화 빨기, 서시천 산책하기, 그림책 읽어주기, 자전거 타기 등 재미와 의미를 주고 싶은 수업들이다. 지난해 가을에는 우리 학교의 대표 교육활동 중 하나인 <섬진강 자전거 마라톤>에서 1학년 아이들의 완주를 지도했다. 아이들과 달리면서 맞은 강바람의 시원함이 지금도 선명하다. 수업을 통해 내가 배우며 가르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한다. 본연의 역할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교장의 수업 참여는 여러 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정기적인 수업을 통해 교실과 학생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고, 교사들의 어려움도 잊지 않게 된다.

 

제주도 그림책 작가 니카는 해녀는 페미니스트다. 그것을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 강인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짱구쌤은 이렇게 말하고 싶다. “교사는 휴머니스트다. 그들은 아이들의 오늘과 내일을 믿는다. 그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사실 교사 시절, 나는 내가 휴머니스트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다. 교장이 교실의 교육력을 믿고 전적으로 지원하면 아이들과 교사는 배움과 열정으로 화답한다. 책임을 지거나 결단이 필요할 때는 계급장 뒤에 숨지 않아야 하고, 함께 지혜를 모을 때는 그것을 떼고 치열해야 한다.

 

학교 안에 존재하는 모든 어른은 선생님이다. 아이들에 있어 수업하는 교사뿐 아니라 교무실과 행정실, 급식과 안전을 담당하는 모든 교직원은 다 선생님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 모든 교직원과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만들어 학교 건축, 생태 교육을 공부하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 정기적인 수업 공개(나눔)를 통해 자기 수업과 교실을 열고, 교사의 교수법 너머 아이들의 배움을 이야기한다. 교장은 꼼꼼하게 아이들을 관찰하여 어려운 부분을 지원하면 된다. 우리가 세운 목표를 다 이룰 수 없다고 해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있다.

 

운동장 너머에 노고단이 보이고 울타리를 따라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이 흐르는 아름다운 학교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2년 후에는 그 풍경에 딱 어울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학교가 다시 지어진다. 긴 복도와 사각형 교실에서 벗어나 천창과 거실, 툇마루가 있는 목조 지붕, 집만큼 편안하고 아늑한 새로운 학교다. 지난 30년 간 교사로 살면서 꿈꿨던 학교 건축에 대한 바람을 남김없이 동료들과 나눈 결과이다. 지난 2년간 모든 용방 가족들이 머리를 맞대고 설계를 함께했다. 어떤 뛰어난 개인도 집단지성을 넘어설 수는 없다. 10년 전, 17명의 폐교 위기에서 지금에 이르렀듯, 학교는 소멸의 위기를 넘어 섬진강을 달리는 용방 자전거 마라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훌륭한 교사가 훌륭한 교장이 된다고 믿는다. 여러 평가 속에서도 교사에게 공모 교장의 기회를 주는 제도가 존속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기대이다. 리더십은 자격증으로 부여되기도 하지만, 그것에만 기대기엔 학교와 지역이 몹시 위태롭다. 우리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20233.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