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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방이야기06] 짱구쌤 이번주에는 뭐해요?

늘 하던 운동장 짱구쌤 수업을 정자에서 한다고 하니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2학년의 1/3이 코로나 등 여러 사정으로 등교를 못했으니 팀으로 나눠 하던 놀이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 그림책 읽기 수업으로 바꿔서 생긴 일이다. 피가 끓는 9살 청춘들에게 앉아서 하는 수업은 고욕이겠으나 [알사탕]의 마법을 믿어보는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그림책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내 책 속으로 빨려들어 올 것 같은 몰입이 시작된다. 그림책의 힘이다. 그림책은 학년을 가리지 않는다. 유치원 꼬맹이들부터 13살 애어른들까지 집중력 최고를 자랑한다. ‘누구라도 교장실’에 쌓여있는 그림책들은 최소 서너 번씩은 읽었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늘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사실 짱구쌤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걱정이 많았다. 호기롭게 약..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5] 선생님들의 변함없는 열정과 사랑을 한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선생님들의 변함없는 열정과 사랑을 한마음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학교 학부모회에서 교문 앞에 내건 현수막 문구이다. 서이초 선생님의 49재를 추모하는 마음과 함께 따뜻한 용방교육공동체에 대한 바람도 담겨있어 그 의미가 더욱 각별했다. 7월에 처음 사건이 알려질 땐 공분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혀가고 그 뙤약볕에 수천, 수만의 교사가 광장에 모일 때조차 남의 일처럼 불구경이었다. 하지만 교실의 선생님들은 달랐다. 2년 차 청년 교사의 꿈과 절망에 공감하는 이들은 점차 늘어갔고 급기야 지난 주말에는 수십만의 기록적인 추모 집회가 열리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그런 일 없으니까 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동안에도 이곳저곳에서 절망을 선택하는 교사들은 속출했고, 나 같은 무관심이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4] 선생님! OO이에요 오랜만에 연락 드려요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죠? 용방에서의 마지막 학기, 아쉬움 없게 잘 보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학교는 공사가 한창이려나요? 용방초도, 구례도, 짱구쌤도 보고싶습니다! 짱구반 한 명 꼬셔서 쌤이 용방에 계실 때 한 번 거 가볼까요? 쌤 부산도 오셔야죠! 요즘 파죽지세 기아! (9월 6일 밤. 광안리 ○○드림) 이번에도 구호물품 수준의 보따리가 도착했다. 수신자의 낡아짐을 애써 막아보려는 듯 여러 종류의 책들과 정성 가득한 손 편지다. 발신자는 2006년 영암초 제자, 제자는 늘 선생보다 의젓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고, 뻔한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세상 중요한 가치를 찾고자 했다. 상당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제자와 나는 공유하는 점이 많은데, 나의 속없음과 제자의 속깊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3] 레이서? 베스트 드라이버? 아니고요, 연비왕^^

드디어 마의 24km를 넘었다. 2년 전쯤 딱 한 번 25를 찍은 후엔 좀처럼 다다를 수 없는 벽이었는데 오늘 벼락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부터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을 애써 자제했고 관성을 최대한 이용하려 애쓴 것이 주효했다. 급가속과 급제동을 줄이고 내리막길에서는 가능하면 페달에서 발을 떼는 습관은 오랫동안 몸에 익은 터라 그리 어렵진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빨리 가려는 본성 또한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다. 운전 경력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운전은 쉽지 않다. 한때는 앞서가는 차를 용납할 수 없었던 레이서임을 자랑할 때도 있었는데 뒤따라 청구되는 과속 딱지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규정 속도만 지키자는 베스트 드라이버 시절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13년 25만 킬로미터를 탄 경유 SUV ..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2] 가장 아름다운 학교 풍경, 동행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울리고 유치원 선생님의 아침 맨발 걷기가 시작되었다. 오늘도 지*이가 동행한다. 에듀 택시로 일찍 등교한 지*이가 며칠 전부터 운동장을 걷더니 요즘은 먼저 인사를 건넨다. “짱구쌤! 안녕하세요^^” 아이와 선생님이 함께 걷는 모습은 학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침저녁으로 운동장을 찾는 맨발들이 늘어나고 있다. 운동장이 잘 정비된 학교로 입소문을 탄 후 조용히 걷기 애호가들이 모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자칭 ‘맨발걷기족’의 숫자가 이젠 제법이다. 아침, 점심시간, 퇴근 후 각자 적당한 시간을 내어 걷고 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멀리 노고단을 두고 걷는 모습은 참 여유롭다. 우리 학교는 기획 회의가 없다. 작은 학교에서도 관례처럼 행해..

나의 이야기 2024.01.28

[용방이야기01] 그런 호사쯤은 누리셔야죠

브라질의 대표 도시 리우데자네이루를 굽어보는 거대한 그리스도상을 한 번쯤은 사진으로라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품은 예수님으로 유명해서 전 세계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고난을 넘어 축복의 상징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망이 담겨졌을 것이다. 중국의 공자상이나 우리 산사의 불상도 그러한 바램과 다르지 않을 테지만 생生에서도, 사死에서도 군상들의 욕망과 질곡을 짊어져야 하는 성인들의 무거운 어깨가 짠해지기도 한다.(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충무공의 어깨도 다르지 않다. 그의 지략과 단심을 나눠 가지려는 후손들의 욕심은 끝이 없어서 수많은 학교와 공원에,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에, 그것까지는 좋으나 음침한 사당에까지 가둬두기도 한다.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했을까? 마음 ..

어깨동무 2024.01.28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EPL 검은 점퍼 아저씨들 늘 궁금했었다. 박지성이 뛰던 맨유의 스타디움에서도, 지금 손흥민의 토트넘 경기장에서도 관중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점퍼를 입고 서서 응원하는 아저씨들 일색이다. 무언가에 화난듯한 표정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90분 내내 열광하는 배 나온 아저씨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일말의 궁금증은 이 책에서 해소되었으니 그들은 바로 베이비부머 노동계급이다. EU 탈퇴를 내건 브렉시트를 주도한 이들로, 한때는 복지사회 영국을 떠받치는 주역으로 칭송받다가 어느 순간 이민자를 거부하고 국뽕을 추앙하며 영국 미래세대의 발목을 잡는 꼰대들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런 억울함과 분노를 축구경기장과 펍에서 풀 수 밖에 없는 가련한 동년배들이다. 저자는 이들 중 한 명과 결혼한 일본인이다. 저자는..

어깨동무 2024.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