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용방이야기04] 선생님! OO이에요 오랜만에 연락 드려요

짱구쌤 2024. 1. 28. 11:36

부산에 사는 제자가 또 한 보따리를 보내주었다. 그림책 [엄청 작아 많아 빨라], 자신이 편집한 [고독 마인드 입문], 그리고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최재천의 공부].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석 장에 이르는 손 편지다.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죠? 용방에서의 마지막 학기, 아쉬움 없게 잘 보내시길 응원하겠습니다. 학교는 공사가 한창이려나요? 용방초도, 구례도, 짱구쌤도 보고싶습니다! 짱구반 한 명 꼬셔서 쌤이 용방에 계실 때 한 번 거 가볼까요? 쌤 부산도 오셔야죠! 요즘 파죽지세 기아! (96일 밤. 광안리 ○○드림)

 

이번에도 구호물품 수준의 보따리가 도착했다. 수신자의 낡아짐을 애써 막아보려는 듯 여러 종류의 책들과 정성 가득한 손 편지다. 발신자는 2006년 영암초 제자, 제자는 늘 선생보다 의젓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했고, 뻔한 길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며 세상 중요한 가치를 찾고자 했다.

상당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제자와 나는 공유하는 점이 많은데, 나의 속없음과 제자의 속깊음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우선 산울림 노래를 좋아하고, 책 읽기와 몸쓰기를 즐기는 편이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결정적인 것은 둘 다 지겨운 것을 참지 못하는 성격 아닐까 짐작해본다.

제자의 편지엔 책 이야기가 많은데, 내가 어렵게 읽은 책(가령 현병철의 피로사회)을 비교적 가뿐하게 읽어내는 걸 보면 나보단 한 수 위가 분명하다.

지난봄, 제자와 부산에서 책읽기 모임을 하는 동료들이 구례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짐작은 했었지만 하나같이 진중하고 기분 좋아지는 사람들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지내는 제자가 부러웠고 마음도 놓였다. 이번에도 그랬지만 가끔 추천하는 책이 겹칠 때가 있는데 독서 취향도 닮아가는 느낌이다. 최재천 교수와 장하준의 책은 항상 우선 구입하여 읽는데 제자한테 받고 보니 더 반갑고 흐뭇했다. [경제학 레시피]는 큰 아들에게 보내 주었다. 부디 그 녀석도 책이 좋아지기를...

스승과 제자의 연을, 불가에서는 하늘에서 바늘을 떨어뜨려 겨자씨를 맞힐 인연에 비유한다. 그만큼 귀한 인연이다. 작금에 벌어지는 교단의 불행이 더욱 아픈 것은, 관계와 인연을 맺는 첫 경험이 아이들에게 두고두고 불신과 두려움으로 남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 쌤은 너의 염려 덕분에 잘 지낸다. 광안리 맥주 마실 날을 기대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