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 운동장 짱구쌤 수업을 정자에서 한다고 하니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다. 2학년의 1/3이 코로나 등 여러 사정으로 등교를 못했으니 팀으로 나눠 하던 놀이 활동이 어려울 것 같아 그림책 읽기 수업으로 바꿔서 생긴 일이다. 피가 끓는 9살 청춘들에게 앉아서 하는 수업은 고욕이겠으나 [알사탕]의 마법을 믿어보는 수 밖에. 아니나 다를까 그림책 첫 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이내 책 속으로 빨려들어 올 것 같은 몰입이 시작된다. 그림책의 힘이다. 그림책은 학년을 가리지 않는다. 유치원 꼬맹이들부터 13살 애어른들까지 집중력 최고를 자랑한다. ‘누구라도 교장실’에 쌓여있는 그림책들은 최소 서너 번씩은 읽었지만 어른인 나에게도 늘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사실 짱구쌤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걱정이 많았다. 호기롭게 약속하고 시작은 하였으나 모든 학년에서 일 년간 버티기엔 의지만으로 역부족이었다. 그 부족함으로 4년을 그럭저럭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림책과 놀이였다. 도서관의 수많은 그림책은 훌륭한 텍스트였고 언제나 만족도 높은 수업 자료였다. 덕분에 수백 권의 그림책을 읽을 수 있었고 이제는 제법 쓸만한 그림책 목록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놀이. 수만 년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아 어디서든 놀잇거리만 있으면 그곳은 견딜 만한 곳이 된다. 그래서 오래 살아남은 놀이는 다 이유가 있어서 언제나 사랑받는다. 삼팔선과 해바라기가 대표적이다. 단순하지만 팀 대항을 할 수 있고, 개인기와 협력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힘, 민첩성, 전략이 고루 필요한 놀이 들이다. 요즘은 보호막 피구가 아이들한테 인기몰이 중인데, 그전까지 하던 피구의 단순함을 넘어서는 몇 가지 장치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놀이는 진화한다. 나 역시 천성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니 놀이 수업이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 4년의 짱구쌤 수업이 마무리되어 간다. 언제 짱구쌤 수업해요? 라며 묻고 기대하는 아이들 틈에서 참 많이도 웃고 행복했다. 교장하면서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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