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만 하잖아요?

짱구쌤 2023. 10. 19. 22:47

도서관 박스 쉼터 노란 매트가 텅 비어있다. 점심시간, 방과 후엔 늘 **이 차지였는데 엊그제 갑작스런 전학으로 이젠 주인을 잃었다.

 

짱구쌤, **이 누나가 막 욕해요.”

2학년 꼬마가 불쑥 교장실에 들어와 하소연이다. 도서관으로 달려가니 노란 매트를 차지한 **이가 아무렇지 않은 듯 책을 보고 있다.

“**! 동생들한테 욕하면 쓰나? 좋게 말해라.”

교장실로 돌아와 앉기도 전에 그 2학년 꼬마가 다시 달려온다. 또 누나가 욕한다는 말에 이번엔 큰소리가 나간다.

교장실로 와!

교장실에 온 **이가 묻는다.

얼마나 있어야 해요?”

“10

교장실에서 잠시 앉아 있던 **이는 결재를 위해 모니터를 보고 있는 사이 밖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도서관에 가보니 천연덕스럽게 그 너란 매트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 교장실로 다시 와!”

왜요? 아무 말도 안하면서

교장실에 가서 말하자.”

여기서 하세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만 하잖아요?”

훈수 안하고 지도할 거야.”

지도 안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도를 안 받으면 전학을 가야 할지도 몰라.”

그렇지 않아도 전학 갈지 몰라요.”

아버지 전직으로 전에 살던 곳으로 다시 가야한다고 했다.

 

**이는 학년 초에 전학을 오고 여러모로 힘들어 했다. 6학년에 갑작스레 전학을 왔으니 친구가 있을 리 없고, 도시에만 살았던 아이에게 구례는 너무 따분한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통학차를 함께 타던 하급생과 말다툼이 커져서 아빠까지 학교에 오게 되었으니 이래저래 정붙이기 힘든 학교라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여름방학에 들어가서 진정이 되었고 개학과 함께 한층 맑아진 모습으로 등장해 다행스러웠다. 학기 초부터 유독 도서관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특히 그 노란 매트에서 하이틴 소설 같은 책을 보는 모습이 자주 관찰되었다. 자기만의 아지트가 되어준 그곳에서 열세 살 청춘을 다독이고 있을 때, 평화를 깨트리는 개구쟁이들에게 좋은 말이 나갈리는 없었을 테고 그럴 때마다 고학년인 자신만 야단을 치는 어른들이 뭘 모르고 훈계만 하는 답답쟁이로 보였을 것이다.

 

1학기 그 다툼이 있을 때 **이와 대화를 하며 많이 놀랐다. 나를 포함하여 어른들의 말을 잘 믿지 않았고, 어른들의 말투를 많이 흉내 내는 것 같았다. 조곤조곤 따지는 모습에 당황했고, 차분하게 **이를 설득시키지 못하는 나에게 화가 났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아이의 말투나 태도를 지적하면서 대화의 주도권을 행사하려 했다. 한심했다.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 짱구쌤이 아직 제대로 사과도 못했는데 가버렸구나. 그 곳 도서관에도 노란 매트가 있었으면 좋겠다.’

2023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