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

짱구쌤 2023. 9. 11. 17:02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장하준 / ·]

 

편견 넘어서기

전라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게으르다

아이들은 잘해주면 기어 오른다

이슬람교는 배타적이다

지금껏 사실인 것처럼 들어온 말들이다. 직관적으로도 거부 반응이 있었지만 경험하고 공부할수록 더더욱 편견에 사로잡힌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가령 전라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한다는 특정 지역을 폄훼하기 위한 악의적인 선동이니 논외로 치고, ‘아이들은 잘해주면 기어오른다는 교육을 일방적인 훈육으로만 여기던 것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권위주의적인 시각이다. 아이들은 존중받을수록 스스로 나아지려고 노력한다.

이 책의 저자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편견을 파헤친다. 더운 나라 사람들이 야자나무 아래에 누워 코코넛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린다는 말은 열대지방 사람들의 낮은 근로 윤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한다. 저자는 여러 자료를 통해 이 주장이 얼마나 모욕적인지를 드러낸다. 열대지방 사람들은 부자나라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을 일하며, 나이 들어서도 일하며, 어린아이들도 더 많이 일한다. 그들이 이렇게 많이 일하면서도 더 많이 생산해 내지 못하는 것은 생산성이 높지 않기 때문인데 이는 교육 수준, 건강 등 노동자 개인의 능력이나 조건과 크게 상관이 없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부자 나라로 이민을 가면 생산성이 크게 높아지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생산성이 상승하는 것은 양질의 사회 기반 시설과 잘 기능하는 사회적 제도, 더 잘 운영되는 생산 시설 때문이다. 열대지방이나 가난한 나라에 대한 이러한 오해는 결국 부자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엘리트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빈곤의 책임을 돌리는 것을 정당화하는 데 한몫했다.(89~91쪽 요약)

 

매력적인 경제학자 장하준

웃기는 이야기 하나, 썰에 의하면 저자가 캠브리지대 교수로 재직할 때 모교인 서울대 교수 임용을 신청했다가 몇 번 낙방했다고 한다. 2023년 세계 대학 경쟁력 순위에 따라 전체 3위 대학의 저명한 교수를 50위 권 밖에 위치한 대학에서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논문 발표나 인용 등이 임용의 기준이 아니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류 경제학(신고전주의)에서 벗어난 저자의 연구가 한몫을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웃픈 현실이다. 부디 사실이 아니기를.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가 낙방해서 지금까지 영국에 머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싶다.

전작에서와 같이 그는 경제학을 쉽게 이야기하려 애쓴다. 나에겐 과학만큼 어려운 경제학을 그래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한 고맙고 친절한 경제학자이다. 18가지 재료(마늘, 코코넛, 멸치, 고추, 콜라, 바나나, 딸기 등)를 통해 보호주의, 관세, 자유주의, 독점, 특허제도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물론 지금껏 진실이라 믿었던 것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도 해야 한다.

 

불온서적과 홍범도 장군

만능키 자유, 누구에겐 자유가 그런 용도로 쓰인다. 자유시장 경제학자에게도 그렇다. 정치적 사회적 자유가 경제적 자유와 충돌하면 그들은 곧바로 경제적 자유만 옹호한다. 자산가의 자유와 충돌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유(가령,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복지 확대 등)는 무시 되거나 비난받는다. 자유의 궤변이요 협작이다. 인류가 오랜 세월 일궈온 자유의 포괄적 범위는 전방위적이어야 한다. 하여 누군가가 계속 자유만 외쳐댄다면 그 저의를 살펴봐야 한다.

저자의 대표작 [나쁜 사마리아인]이 몇 년 전 국방부 불온서적으로 분류되어 국제적인 망신을 받은 바 있다. 48개국 이상에서 번역되어 저명한 국제 학술상까지 수상한 저작이 반미의식을 고취한다나 어쩐다나~

때아닌 홍범도 논쟁이 가관이다. 가장 치열한 항일 독립군으로 평가받아 박정희 시대에 훈장을 추서 받은 영웅에게 색깔을 덧씌우는 행위는 천박함을 넘어 자기를 부정하는 자멸 행위이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아무튼 이 책은 재미있다. 갖은 음식이 소개되고 뜻밖에도 음식에 찐인 저자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도 즐겁다. 음식과 경제학이라니? 놀랍다. 좀 더 말랑말랑해지고 가벼워져야 한다.

2023911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