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버티는 것과 견디며 나아가는 것

짱구쌤 2023. 10. 15. 21:40

아침 그리고 저녁 / 욘 포세 / 문학동네

 

노벨문학상

2023년 노벨문학상은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가 받았다. 매번 수상 후보에 올랐다는데 나에겐 듣보작이다.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노벨상을 주는 건지 따지고 싶은 마음과 적어도 노벨문학상 작품 정도는 읽어야지 하는 부러움에 곧바로 책을 구입했다. 작가 정여울의 추천사처럼 심각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위대한 인간이 등장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고 눈부신 이야기를 특별한 언어로 이야기한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침묵과 리듬의 글쓰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얼핏 이해가 될 듯도 싶다. 등장인물들의 짧은 대화에는 늘 침묵이 놓여진다. 독자는 그 사이에서 숨죽여 다음 대화를 기다린다.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글의 힘이다. 노르웨이 어느 섬에 사는 평범한 어부 요한네스가 생의 마지막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공간을 넘나들며(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이라 부르기에는) 존재와 소멸을 묻고 답한다.

 

멜랑콜리커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다. 작가를 연구한 주잔 크뤼거에 의하면 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존재의 불안을 끊임없이 사색하는 멜랑콜리커들이다. 멜랑콜리커는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사후 세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전진하는 대열에서 멈춰 주변을 돌아볼 줄 알고, 정서가 우울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과잉소비사회와 자본주의에 반하는 인성의 사람이다. 문제의 표면이 아닌 핵심을 파고들며 스스로에게 정직한 사람이다. (146~7쪽 요약)

정서가 우울하고, 모호하게 말하는’, ‘자본주의에 반하는부분을 일부 제외하곤 대체로 나도 멜랑콜리커에 속하는 것 같다. 아니 사람들 상당수가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 그래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번역자는 삶의 원형이 응축된 작품이라고 했다.

 

견디며 나아가는 것

젊었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쉽게 공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진하는 대열에서 멈추고, 삶을 버팀으로써 어느 순간 빛을 발하는멜랑콜리커들이 너무 답답하다고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표현주의 판화가 케터 콜비츠의 삶은 견디는 것이 아니다. 견디며 나아가는 것이다.”라는 말이 훨씬 멋지게 들리는 시간을 건너왔다. 물론 아들을 1차 대전으로 잃고, 전쟁과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참여 예술가로 거듭난 작가의 진정성은 여전히 경외롭다. 다만 버티고 견디는 것이 나아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것, 아니 버티는 것만으로도 이미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많이 알아버린 지금은 공감할 수 있다.

 

침묵과 리듬

작가를 ‘21세기의 베케트라고도 평가한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집필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베케트가 구사한 제2의 언어 사이’, ‘침묵을 잘 구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도 행간의 침묵이 반복되어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비약하고 생략된다. 하지만 그 침묵은 어떤 자세한 설명보다 많은 것을 들려준다. 아마도 리듬이 그것을 받쳐주기 때문일 것이다. 난 그것을 자연스러운 입소리라 정의한다. 지나치지 않게 생략되면서도 호흡이 자연스러운 문장, 그런 문장을 읽으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리듬감이 생긴다. 도달하고 싶은 경지이다. 생태학자이자 작가인 최재천은 그것이 가능하려면 많이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권한다. 탁 막히지 않고 호흡이 거칠어지지 않을 때까지 고치고 고치면 된다는 데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것이 아쉽다. 아마도 침묵은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침묵하라는데 큰일이다.

20231015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