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너를 만나기 위해 공룡이 다 멸종했어!

짱구쌤 2023. 8. 17. 16:42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김상욱 / 바다출판사]

 

건축가 유현준의 건축가가 본 교육은, 역사는, 사회는?” 이런 표현이 멋져 보였다. 획일화된 학교 건축이 바뀌지 않으면 교육과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그의 결론은 그래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아야, 세상은 무채색의 평면에서 다양성을 가진 입체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물리학자다. 그것도 인문학 소양을 풍부하게 갖춘 친절한 과학자다. 그런 그가 원자에서 인간까지 세상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고 하기에 주저 없이 주문한 책이다. 상당한 수의 과학책을 구입해서 읽었지만 난 아직도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아이들에게 설명하지 못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으니 설명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번에도 낚인 것 같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대신 물리학만으로 세상을 이해할 수 없기에 더 많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려 한다는 겸손함과 유연함을 알게 되어 좋았다.

 

결국 물리적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필연의 우주에서 너를 만난 이 사건은 내가 아는 유일한 우연이다. 이렇게 너와의 만남은 아무 의미 없는 필연의 우주에 거대한 의미를 만들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물리학자의 사랑이다. (313)

세상은 기본입자에서 시작하여 원자, 분자, 생명, 지구, 태양, 우주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층위로 구성된다. 물리학자는 다음 층위로 이어지는 합당한 증거와 논거를 찾아야만 이해하는 직업을 가졌기에, “너를 만나기 위해 박테리아에서 진화해 여기까지 왔어.”, “너를 만나기 위해 공룡이 다 멸종했어.” 같은 손가락 오그라드는 표현을 납득하긴 어려워도 예측 불가능한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라고도 말한다. 난 나의 비논리적 행태를 그냥 두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도 그의 전공인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 책의 제목을 따오고, 전공과 무관할 것 같은 죽음과 생명, 사랑과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세상 의미 있는 일들은 때론 무모해 보이는 시도로 이뤄낸 것들이 상당수다.

분야의 선을 넘는 것은 때로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선 너머에만 보이는 것이 있다. 자신이 잘못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스런 태도로 선을 넘는 것은 때로 아주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236)

양자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쓴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필자는 많은 용기와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내가 저자의 작업을 보고 얻은 것과 같다. 한때 통섭과 융합이 유행처럼 번질 때가 있어서 대학에 관련 학과와 학문이 생길 정도였는데 지금은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한다. 칸막이의 폐쇄성은 재차 말할 것이 없거니와 전문성이라는 완고함이 더욱 답답해진다. 층위를 바꿀 때마다 생겨나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특성을 창발이라고 부른다. 동종교배의 위험성이나 우물 안의 답답함을 뛰어넘는 과감한 시도는 그 자체로 박수 받아야 한다. 저자의 무모한 시도 역시 그러하기에 나는 그를 창발적인 물리학자라 부르고 싶다. 그나저나 과학에 대한 나의 무지는 수많은 별 헤는 밤의 뒤척임에도 요원해 보이니 어찌해야 하는지..

202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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