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 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짱구쌤 2023. 10. 25. 08:17

 

무해한 사람들, 선한 사람들
언제 회신될지 모를 신호를 우주에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는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과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 자연 그리고 우주를 동경한다. (작가의 말 중)
정말 혜성같이 등장했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저자 심채경은 행성과학자다. 목성, 토성, 수성, 타이탄을 거쳐 지금은 달을 연구하고 있다. 현대의 천문학자는 하늘보다는 모니터를 보는 시간이 훨씬 많다는 사실과 함께, 그가 정말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진 과학 저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주를 연구하고 사랑하는 ‘무해한 사람들’이란 말 속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나와의 공통점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분야라 더 신기했다. 언젠가는 터트릴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으로 아이들의 오늘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 학교에 있음을 늘 다행이라 생각했다. 심채경의 연구실과 짱구쌤의 교실은 많이 다르지만 무해하고 선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선생’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
이 젊은 청춘에게, 그따위 싸구려 축복조차 해주는 ‘선생’한 자가 이때껏 없었다는 게 화가 났다. 넌 잘하고 있다고, (중략)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가? (62쪽)
책을 읽다가 얼굴이 달아오를 때가 더러 있는데, 주로 앞의 글처럼 학교와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이다. 보통 좋은 기억보다는 아쉽고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많다. 교양 수업을 들은 경영학과 학생이 자책하며 보고서를 제출하자 저자의 다소 뻔한 격려가 이어졌는데, 그것조차도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자 내뱉은 말이다. 물론 왜 한 명도 없었겠는가? 지금껏 그 경영대 학생에게 쏟아진 수많은 선생들의 격려 한마디쯤. 그럼에도 그게 아프게 읽혔다. 저자는 오랜 시간을 비정규직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한 줄을 쓰더라도 자기의 언어로 쓰라는 것, 그렇게 하기위해 학생들과 나눈 많은 편지들이 인상 깊었다. ‘우주를 사랑하는 만 가지 방법’처럼 자기 일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먼저 살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 ‘선생’들이 할 일 중 하나는 분명하다. 청춘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는 일!

우주인 이소연에게 사과함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이 없다는 이유로 뱀 허물 벗듯 우주인으로서의 책임을 벗어던졌다’는 비난은 오롯이 이소연의 차지였다. (103쪽)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에게 사과부터 해야겠다. 유력후보였던 남성 우주인이 규정 위반을 해서 이소연으로 교체될 때는 그런가 보다 했지만, 이후 귀환하여 미국 유학과 휴직, 항공우주연구소 퇴사를 기사로 접할 때에는 ‘먹튀’라는 항간의 평가에 부화뇌동했던 것 같다. ‘뭐,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만두고 미국으로 튀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여성 과학자에게(과학자가 아니라도) 가해지는 과도한 잣대를 이야기한다. 저자 역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수업과 연구를 통해 증명해야 하는 고단한 삶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유학가지 않은 국내파 천문학자로 끊임없이 달려온 자신을 다독이며.

뭐 그런 날 있잖아요. 관측하기 딱 좋은 날
요즘 타이거즈 원년 팬으로 새로 구입할 유니폼을 고민하고 있다. 김도영이 일순위다. 4툴 플레이어의 다재다능도 그렇지만 어린 나이 덕분에 한 번 구입한 유니폼을 오랫동안 쓸 수 있겠다는 가성비도 한몫 할 것이다. 그 김도영이 유행시킨, ‘뭐 그런 날 있잖아요. **하기 좋은 날^^’처럼 저자에겐 ‘관측하기 딱 좋은 날’이 있다. 천문대를 둘러싼 수 많은 난관들을 뚫고 초코파이 우걱우걱 씹으며 온전히 관측으로 새벽을 맞이하는, 그런 다음 꿀 같은 단잠을 잘 수 있는 날. 지금이 나에겐 그렇다. 아이들과 운동장 수업하기 좋은 날, 서시천 자전거 타기 좋은 날, 점심시간 노고단 바라보며 커피 마시기 좋은 날, 연못 물멍 때리기 좋은 날, 저녁 맥주 마시기 좋은 날들 투성이다. 아이 어렵게 키우는 동료의 문자에 폭풍 눈물을 흘리던, 감정의 진폭이 커졌던 날은 행성 과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을, 그 자신도 무해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다.
2023년 10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