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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 외갓집, 커서는 처갓집, 학교에선?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딱 그런 격이다. 건장한 아들이 둘이나 되건만 이럴 땐 늘 안 보인다. 할 수 없이 처갓집 한 보따리는 부부가 옮겨야 한다. 결혼한 지 2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김치와 쌀을 비롯한 기본 식량은 모두 처갓집에서 나온다. 오랜만에 영암에서 가족들을 만나 김장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서울, 광주, 순천의 네 딸들은 각자의 집으로 가져갈 친정 엄마의 정성들을 챙기느라 분주하다. 나를 포함한 사위들은 “어렸을 때는 외갓집 것을 먹고, 커서는 처갓집 것을 먹어야 한다.”는 오랜 어른들의 말씀이 딱 맞다며 서둘러 짐을 꾸려 각자의 집으로 출발한다. 유난히 쿵짝이 잘 맞는 처갓집 식구들과 지난해 추석을 우리 학교에서 보낸 적이 있었다. 집에서 치루는 명절은 온전히 장모님 몫이어서 집..

나의 이야기 2023.08.26

편 나눠 경쟁하기 싫어요

“저는 이런 놀이 싫어해요. 왜 편을 나눠서 경쟁해요.” 1학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딱히 반박할 수는 없어서 “이기지 않아도 돼. 그냥 놀면서 하자.”로 얼버무렸다. **이가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초반에는 열심히 재미있게 참여했었는데, 좀 전에 했던 삼팔선과 달리 신체 접촉이 빈번해 지면서 죽는 횟수가 늘어나자 나온 반응이었다. 그렇다. 모두가 좋아하는 삼팔선 놀이는 닿기만 해도 목숨이 결정되는 단순한 경기 규칙 때문에 체격, 근력 등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지만, 해바라기는 차원이 다른 놀이다. 전래 놀이의 끝판왕으로 불리는 오징어 놀이의 원형 쯤 되는 이 경기는 처음으로 신체 접촉이 허용되며 밀고 당기고를 통해 작은 부상 위험을 감수한다. 심판의 영이 서지 않으면 곧바로 벤치 클리어링..

나의 이야기 2023.08.25

맨발로 운동장을 걸어본 적 있나요?

장마가 길어지니 짱구쌤 수업도 만만치 않다. 아이들도 나도 운동장 놀이 수업이 좋은데 맨날 비가 오니 고민이 많다. 책 읽어주는 것도, 계기 수업하는 것도 나름 좋지만 이미 놀이 수업에 맛을 들인 녀석들의 반응은 온도차가 심하다. 뭘 해도 “언제 운동장 나가나요?”로 토를 단다. 그래서 이번 주는 아예 운동장에서 비를 맞는 수업을 작정하고 시작한다. 그림책을 한 권 읽어주니 예상했던 대로 “오늘도 운동장 안 나가요?”를 합창한다. “자, 양말을 벗고 우산 쓰고 맨발로 운동장으로 모이세요!” 우레탄 놀이터를 지날 때 빗줄기가 거세진다. 도서관 시멘트 주차장과 지킴이 부스를 지나 새로 만든 잔디밭에 올라선다. 탄성이 터진다. “폭신폭신해요. 간지러워요.” 나무 데크에서 숨을 한 번 고른 후 본격적인 운동장 ..

나의 이야기 2023.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