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년간 학교 물건 잃어버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학교에 오면 누구나 착해지나 봐요~”
정말 그랬다. 새로 만든 데크 쉼터나 복층 정자에 멋진 캠핑용 의자, 빈백, 체스, 만화책 등을 두어도 누구 하나 손대지 않고 그대로였다. 봄철 별목련꽃이 흐드러져서 주말이면 백여 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학교를 자랑할 일이 생기면 단골 레퍼토리로 빠지지 않는 것이 ‘높은 시민 의식’이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개학을 앞두고 새로 조성한 생태연못에 아이들을 놀라게 할 비단잉어를 들였는데 월요일에 출근해 보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으니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것도 들여놓은 지 3일도 안 된 생물을. CCTV를 돌려봐도 의심할 만한 점이 없자, 급기야는 지능범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기까지 했다.
생각할수록 괘씸해서 금액으로는 크지 않지만 경찰 신고를 고민할 즈음, 행정실 희*샘이 와서는, “교장 선생님, 혹시 이것 아닌가요?” 보여준 사진에는 그토록 찾던 비단잉어 두 마리가 있었다. 부리나케 연못으로 달려가 보니 빠르게 헤엄쳐서 숨는 잉어 한 마리가 보였고, 잠시 후 다시 가서 숨어서 보니 잉어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 한가롭게 놀고 있었다. “허 참, 이 녀석들이 죄다 숨어 있었네.” 멋쩍은 웃음으로 자리를 피했지만 이미 바닥을 보인 창피함은 쉬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 누가 학교에서 키우는 잉어를 가져가겠는가? 상춘객이 다녀간 월요일 아침, 교정을 순회해도 그 흔한 쓰레기 하나 보이지 않은 학교였다. 발생한 쓰레기를 되가져가고, 학교의 기물 하나하나를 자기 자녀가 다니는 학교처럼 아껴주던 뭇 시민들의 높은 공중도덕심을 찰라의 의심으로 걷어차 버렸으니.
연못엔 지난여름에 풀어놓은 구피가 10배쯤 가족 수를 늘렸고, 마트에서 구입한 금붕어의 살들은 통통해졌으며 새로 들어온 잉어들은 유유히 자유를 즐기며 무리 지어 다닌다. 담당샘의 수고로 만들어진 수풀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젠 그 양철판 같은 교장의 갈팡질팡 마음만 진득하게 내려앉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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