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순천 집까지 멀지도 않은데 왜 이리 자주 안 와? 거기서 뭐해? 관사에서 머무는 날이 늘어나자 아내가 묻는다. 응, 할 일 많아. 저녁 식사하고 성능 좋은 랜턴 들고 교정을 두어 바퀴 산책하고 사무실에서 책 좀 읽다가 들어와. 심심하면 목공실에서 작은 소품이라도 하나 만들고. 자고 일어나서 학교를 한 바퀴 돌아, 길냥이들 먹이도 주고, 전원을 올리고 세콤을 해제한 후 우유를 냉장고 앞에다 옮기지. 제빙기를 돌리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밖으로 내놓고 아침맞이를 하지. 근무 시간 중에는 가끔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고 주무관님과 눈이 맞으면 뭘 고치든지 설치하든지 일을 하지. 완전 소사네. 이소사, 쏘사리. 맞아, 소사! 쏘사리 좋다.
가장 사랑하는 시간은 6시쯤이다. 취사 버튼을 눌러두고 다락 정자에 앉아 바람골을 지나는 시원함을 만끽하며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듣는 시간. 어둠이 다 내려앉고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새로운 풍경이 교정을 가득 채운다. 멀리 고속도로엔 은하철도999가 공중으로 날아다니고, 인적없는 운동장엔 고라니가 뛰어들기도 한다. 비 내리는 날엔 트리하우스에 올라 양철지붕의 랩소디를 듣고, 눈이 많이 온 날엔 그냥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이런 호사를 누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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