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가을 우체국 앞에서♬

짱구쌤 2023. 8. 25. 14:21

그림책 속 우체국처럼은 아니지만 학교 앞 용방우체국의 풍경도 사랑스럽다. 두 명만 근무하는 우체국 문을 열면 곧 무슨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

우리 학교와 YB라는 이니셜이 같은 윤도현의 명곡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참 좋아한다. ~란 은행잎들이 깊게 드리워진 우체국을 생각하면 그 자체로 웃음이 나온다. 교장실 유리창으로 용방 우체부 아저씨가 나타나면 예외 없이 가슴이 뛴다. 107~8은 한겨레신문만 배달 되지만 나머지 2~3 때문에 매일 목을 빼고 기다린다. 용방우체국은 학교에서 200M 거리에 있어서 걸어서도, 퀵보드로도 순식간에 다녀올 수 있다. 직원들 말로는 아마도 우체국을 전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교장일 거라고 할 만큼 뻔질나게 드나든다. 대부분 월간 [용방살이]를 발송하거나 우표를 사러 간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두 편의 손 편지를 받고 보낸다. 대부분 오래 전 제자들이거나 옛 동료들이다. 가끔 학교로 찾아오는 제자들이 가장 놀라는 것은 오래전 쓴 편지를 보는 것이다. 십수년 전 유치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하는 짱구쌤]으로 시작하는 편지를 읽을 때 아이들은 대부분 눈물을 흘린다. 자기가 쓴 그 유치찬란한 편지를 보고 말이다. 관사 다락에 보관되어 있는 3천 통이 넘는 편지를 가끔 꺼내 읽는다. 아무 편지나 집어 들어도 나는 곧바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편지의 압도적 힘이다.

 

아직도 손 편지의 힘을 믿는다. 그림책 [엉터리 집배원]의 그 아저씨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를 위해 연락 없는 이국만리의 아들을 대신해 거짓 편지를 읽어드린다. 매일 우체부를 기다리는 촌 할머니의 마지막은 그래서 아름답고 행복했을 것이다. 오늘도 용방 우체국 오토바이가 들어오고 난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간다. 오늘은 누굴 만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