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김대중자서전1,2-김대중

짱구쌤 2012. 12. 30. 17:00

1. 제목 : [김대중 자서전1,2]
2. 지은이 : 김대중
3. 출판사 : 삼인
4. 기간 : 2010년 8월 23일-9월 11일

제법 잘 나가던 독서 진도가 이 책에서 무뎌지기 시작했다. 방학이 끝나고 개학이라는 분주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빠르게 읽을 수만은 없었던 나의 복잡한 심경 때문이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김대중 선생(난 원래 이 말이 자연스러웠다)에 대한 두 개의 인연이 떠오른다. 1987년 대통령선거 때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87항쟁의 뜨거운 여름을 지나 그 해 겨울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 나는 다른 대학생들처럼 공정선거감시단의 일원으로 대선에 참여했다. 5공화국의 철권통치 하에 치러진 선거인 만큼 부정선거에 대한 우려가 컸고 내심 김대중후보의 당선을 위한 민주세력의 선거운동 방식이기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선거에서 우리는(김대중 후보) 패했고 노태우 후보의 당선을 지켜봐야만 했다. 물론 야권 후보의 분열(김영삼과)때문이었다. 자서전에서 선생 자신도 밝혔듯 그 때 자신이라도 양보해서 국민의 뜻을 따랐다면 분면 승리했을 거라고 후회했다.

두 번째 인연은 하의도에 대한 기억이다. 2008년 하의도에서 보낸 일 년간 그가 다녔던 학교와 그가 공부했던 서당, 그의 생가마을 후광리에서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했었다. 놀란 것은 하의도 사람들 중 김대중 선생과 닮은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이었고, 이렇게 외딴 섬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처럼 큰 꿈을 가지고 성취했다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었다. 불편한 교통과 여건 때문에 일년으로 하의도 생활을 마감했지만 2009년 그의 마지막 고향방문을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남기도 했다. 그때 그는 “모교의 후배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표정에 구김이 없어 참으로 좋았다.”라고 일기에 적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내 몸의 반쪽이 무너진 느낌’이라고 했고 생의 마지막까지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거짓의 편, 늘 깨어서 행동하라!”고 외치던 구순의 정치가를 보면서 그간 내가 가졌던 여러 편견과 판단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다. 내가 자서전을 쉬이 빨리 읽을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러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나는 두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아니 지지는 했을망정 그에게 투표하지는 않았다. 1992년과 1997년 선거에서 나는 두 번 다 진보정당에 투표했다. 심정적으로는 그의 당선을 바랐지만 나는 이 땅의 진보정당이 더욱 빨리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지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략적 판단이 있어 그렇게 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선생에 대한 미안함까지 없애주지는 못한다.

자서전이 갖는 필연적인 한계(자기중심적이며 방어적)에도 불구하고 두 권을 합쳐 13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이 자서전은 한 개인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일제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수많은 사건과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평가는 한 편의 역사책을 읽는 것과 비슷하다. 읽으면서 놀란 것은 매 사건을 뒷받침해주는 사료와 거기에 대한 저자의 뚜렷한 기억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것이 그의 천재적 기억력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평소의 가진 그의 꼼꼼한 기록 때문이어서 가능했다고 한다. 대학 노트에 깨알같이 씌여진 일기 같은 수십 권의 노트를 보면서 기록의 위대함과 진실함을 새삼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살다가 죽는다. 자서전의 말미에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회고하지만 인생 전체에 걸쳐 일관성과 치열함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한다. 이제 절반을 넘어선 내 인생의 반환점에서 다시 한 번 삶의 결기를 세우고 나를 들여다본다. 선생의 자서전이었지만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게 만든 좋은 책이었다.

비가 내린다. 주말 약속이 주의보로 날아가 버리고 작은 사택 컴퓨터 앞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쓰는 독후감이다. 즐거운 독서여정이었다. 선생의 영면을 빌어본다

 

2011년 1월 28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