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 허수아비춤-조정래

짱구쌤 2012. 12. 30. 16:54

 

12월 5일 일요일 아침, 모처럼 광주 어머니 댁에서 자고 난 후 리영희 선생님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 머리에 ‘쿵’하는 충격으로 잠시 어지러웠다. 사상의 은사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범 이셨던 리선생님은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친 분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읽었다. 조정래 작가의 3대 대하소설(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을 모두 읽으며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리영희 선생님 많은 저작(대화, 전환시대의 논리,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동굴의 독백, 스핑크스의 코 등)은 나의 의식 체계를 균형있게 정립해 주었다.

 

하수아비 춤은 그간 작가가 꼭 써보고 싶은 재벌이야기다. 아니 경제민주화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앞의 많은 저작이 그러했듯 이 책도 참 많은 공력이 든 책이다. 아침부터 저녁 잠들 때까지 셀러리맨이 근무하듯 작가로서 글쓰기 노동에 진력한다던 선생의 노고는 차치하고서라도 저술을 위한 방대한 사료 조사, 현장 방문, 인터뷰 등이 뒷받침되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일광그룹의 강기준이 태봉그룹의 박재우를 스카웃(아니 빼돌리기) 하려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일광그룹의 오너가 구속된 후 그룹차원에서 진행되는 비자금 관리와 재산 상속에 대한 조직적이며 총체적인 작업이 이 소설의 큰 얼개이다. 한국 재벌이 어떻게 태동하고 성장하였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재로 여전히 진행중인 재벌가의 불법적인 행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특히 삼성비자금와 편법 증여(좋게 말하자면이고, 실제로는 세금 피하는 불법 상속)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이 자꾸 오버랩된다. 실제 작가 역시 이 사건이 모태가 되어 작품을 구상한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모두가 안다고 생각하는 이러한 재벌가들의 불법행동이 실제로는 너무 모르고 있다 것이고, 설령 안다고 하여도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는 점, 심지어는 자발적으로 복종하는(기업이 잘되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이 지나쳐 파렴치한 경제사범에 대해 너무 관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질타한다.

 

이전에 전략기획실이라 불리는 옥상옥의 기구(이 글에서는 문화개척센터)를 통해 사회 여론 주도층(검찰, 언론, 법조, 학계, 공무원)을 포섭하는 과정이 소상이 나열된다. 뇌물(혹은 선물)은 기본이고 접대, 연수 지원, 광고 몰아주기, 약점 캐기 등으로 통해 친 기업군을 조직하고 이들로 하여금 법과 여론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이 경악케한다. 무심코 뉴스와 기사 속에서 지나친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말이야 좋지)이 실상은 갖가지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건설사의 공기 단축으로 인건비 빼돌리기, 재료 과대 상정, 이중 재무 구조를 통한 세금 포탈 등) 이를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른바 여론주도층에게 살포한다. 그래서 한때 기자들 중 000장학생 이라는 말도 유행하였고 요즘 언론을 타는 [그랜저 검사]나 ‘떡검’(떡값을 챙기는 검찰을 빗대는 말)이 그렇게 만들어진다. 이 땅의 모든 기업들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투명경영을 하고, 그에 따른 세금을 양심적으로 내고, 그리하여 소비자로서 줄기차게 기업들을 키워 온 우리 모두에게 그 혜택이 고루 퍼지고, 또한 튼튼한 사회복지사회가 구축되어 우리나라 사람이 진정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다.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다.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어찌 버꿀 것인가? 답답하고 답답하던 차에 리영희 선생의 영면을 접했다. 전 독립기념관장 김상웅은 리영희 선생을 이렇게 회고했다. “나이 60이 돼서야 온수가 나온 문명의 혜택을 입은 ‘후진’, 잘나가던 기자 신분에도 아버지 회갑을 차려드리지 못한 ‘무능’, 감옥에서 어머니 임종도 지키지 못한 ‘불효’, 자식들에게 외식 한끼 사주지 못한 ‘청빈’의 길을 걸으셨지요.” 둔감해지는 일상에 차가운 냉수마찰과 같은 선생의 우직한 삶이 나를 아프게 한다. 부끄럽다..

2011년 1월 15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