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내 인생의 음악 편지

짱구쌤 2023. 8. 2. 12:21

내 인생의 음악 편지

[우리가 하려고 했던 그 거창한 일들 / 이종민 엮음 / 걷는사람]

 

행복한 사람, 이종민

딱 내가 해보고 싶은 일들이었다. 가르치는 일을 무사히 하다 퇴임하기, 음악 매일 듣기, 좋은 사람들과 술 자주 마시기, 애틋한 사람들과 편지 나누기, 시골집에서 마음대로 살기, 읽고 쓰기. 그리고 이렇게 [내 안생의 음악 편지]처럼 여러사람들을 부추겨 정년 퇴임 책 출판까지, 어느 것 하나 부럽지 않은 것이 없다. 전북대 영문과 교수, 전주한옥마을을 키운 문화기획가, 시민사회활동가로 마당발을 과시해온 그가 2년 전, 정년 퇴임을 앞두고 지인 116명에게 [내 인생의 음악 편지] 원고를 받아 출간한 책이다. 각자의 인생 스토리가 깃든 음악을 소개하는 편지는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장르를 포괄한다. 내가 퇴임할 때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기념 문집보다는 그간 나와 만나온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를 모아 공유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분은 벌써 실행에 옮겼다. 두 발쯤 늦은 셈.

 

나의 기타 이야기

매일 두 시간 이상 음악을 듣지 않고서는 잠들 수 없을 만큼 음악을 사랑한다. 그 싹은 중고등학교 때 집에서 들은 포크 음악 때문이었다. 음악을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늘 라디오와 오디오를 켜 놓으셨고, 자연스레 대물림한 대학생 형의 음악적 취향을 뭣 모르는 동생이 따른 것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이지 않은 음악은 80년대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포크, 민중, 국악이었다. 그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송창식이었다. 지금도 최고의 음악가는 단연 가객 송창식이다. 그의 노래는 모두 좋으나 [나의 기타 이야기]는 드라마 같은 가사, 쉬운 멜로디, 그리고 내지리지 않는 그의 목소리까지 더해져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은 최애곡이 되었다. 당연히 한국 최고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반주해야 한다. 지금도 형님은 남평 주택에서 원없이 음악을 들으며 살고 있다.

https://youtu.be/ifwGqBEkYKA

 

 

Gracias A La Vida

외국 음악은 존 바에즈와 사이먼엔 가펑클, 비틀즈 정도로 한정되어서(형 취향) 남들 다 듣는 팝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른 Gracias A La Vida(생에 감사함)는 민중 음악이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를 보여준다. 선명성, 간결성, 전투성을 민중 음악의 고갱이로 생각했던 것에서 서정성과 대중성을 갖춘 품격있는 음악으로 옮아갔다. 독재 정부를 피해 시작한 망명을 청산하고 목숨을 건 귀국을 결행해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연 콘서트는 그 자체로 저항이자 승리의 축제였다. 백미는 Gracias A La Vida. 남미 원주민의 정서와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노래는 그녀의 절창으로 폭발한다. https://youtu.be/ryn4BTGA28E

 

명동 콜링

요즘 가장 많이 듣는 곳이다. 크라잉넛의 원곡을 카더가든이 새로 불렀다. 본명 차정원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Car the garden은 조폭 같은 외모와 달리 감미로운 음색을 들려준다. 고음 경연장이 되어버린 각종 경연프로그램이 난무하지만 단연 그의 노래가 최고였다. 인디음악을 특별한 음악이라 생각했었고 그래서 매니아들만 좋아하는 거야라고 무지와 무관심을 합리화했었다. 묵묵히 자기 음악을 만들고 부르는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음악은 지금 얼마나 삭막했을까? 너무 늦게 알게 되어 뒤늦은 애정을 쏟는 중이다. 관사 앞 정자에서 가끔 하는 지인들과의 밤시간엔 어김없이 인디음악이 어울린다. https://youtu.be/xYoUt4Q1-hg

 

山川草木

국악은 주로 판소리와 국악관현악 같은 연주 음악을 들었었다. 가끔 조공례님의 들노래 같은 민요나 요즘 뜨는 크로스오버 국악(두 번째 달, 이날치 밴드 등)도 들었지만 시조나 가곡은 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편식인 셈이다. 매일 5시 클래식 라디오의 [FM풍류마을]을 통해 다양한 국악을 듣고 있다. 그래서 알게 된 음악이 바로 강권순의 산천초목이다. 제주 민요를 편곡한 이 곡을 처음 듣는 순간이 선명하다. 차를 멈추고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을 멍했던 그 날, 나는 나의 음악 취향이 넓혀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여창가곡의 대표주자인 강권순의 목소리는 우리가 아는 서양 음악의 아리아나 프리마 돈나의 어떤 성악에도 뒤지지 않는다. https://youtu.be/Jmd4S70O3ac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클래식은 몇 년째 듣고 있지만 누구들처럼 딱 들으면 작곡가를 구별해 내지 못한다. 막귀다. 그런 클알못인 내게 제대로 클래식의 맛을 알게 해준 이는 임윤찬이다. 반 클라이번에서 최연소 우승을 거머쥐고 18살의 청년 피아니스트는 두렵다. 이젠 산에 들어가 평생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했다. 리스트, 모차르트, 라흐마니노프의 난이도 높은 곡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콩쿨의 영상은 많은 이들을 클래식에 입문하게 하였다. 그가 얻은 명성으로 각국을 돌며 연주회를 다니면서도 매번 다른 곡들에 도전한다는 이 순수 국내파 연주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가 홍석원의 광주 시향과 협연한 이 곡은 다시 한 번 왜 임윤찬인가를 증명한다. 변방의 광주시향을 굴지의 오케스트라로 키워 낸 지휘자 홍석원의 역량에, 노력하는 천재 피아니스트가 찰떡 호흡으로 만든 연주는 행복을 전파한다. https://youtu.be/x-OwtWX1AbA

난 평생 음악 들으며 살 거다. 그래서 설렌다.

202382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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