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어른 아이 김용택

짱구쌤 2020. 10. 4. 17:04

힘센 김용택
[ 어른아이 김용택 / 김훈 외 / 문학동네 ]



2008년 회갑 퇴임
예년과는 많이 다른 추석 연휴에 누군가는 걷고 읽고 그렸다는데 난 읽고 쓰고 조금 일했다. 나중에 퇴임하고 나면 그려질 일상이다.(음악 듣기가 추가) 아파트에서 일하기(음악 듣기)는 좀 그래서 시골에 집을 짓는 계획도 마련해 두었다.
그래도 여전한 걱정은 시골 일을 잘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모기나 벌레에 민감한 편이라 그것들이 기승을 부리면 얼른 쾌적한 아파트로 돌아오곤 하는 도시촌놈 기질 때문이다.
2008년 날짜가 적힌 책을 보고서야 김용택 선생이 퇴임한지가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하며 새삼 놀랐다. 그해 11월에 사서 읽었으되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었고(역시 기록하지 않은 책은 읽지 않은 것) 따라서 새로 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2008년이면 하의도라는 섬마을에 있을 때인데 책보다는 섬에서 자전거타고 낚시하고 아이들하고 노는 것이 일인 때이기도 하다.
하여간 당시 회갑을 맞아 명퇴를 한 김시인을 축하하기 위해 지인들이 모여 이 책을 발간하였다는데, 엄청난 인맥에 놀랐고 그 많은 지인 중 동료 교사가 없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김용택이란 사람
50여명이 넘는 글쟁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건데, 김용택은 말이 많고, 성질 잘 내고, 잘 삐지고, 우스개 소리 잘하고, 목소리 크고, 사투리 잘 쓰고, 술 잘 못 마시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금방 형·동생하고, 영화보기 즐기고, 아침 일찍부터 전화해서 화내고, 누구나 집에 가서 밥 먹자고 하는 괴짜 남자 어른이다. 일반인이 이쯤 되면 흠 많은 기피인물이 될 테지만 그에게는 모든 것이 용서가 되고 심지어는 장점도 되는데 순전히 섬진강과 아이들 때문이다. 순창농고가 학력의 전부인 섬진강 시인은 문학을 독학으로 공부했다. 친구 따라 엉겁결에 선생이 되고 나고 자란 진메(長山)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길고 긴 혼자만의 시간이 있었다. 섬진강 연작시로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된 이후에도 그는 그곳을 떠나지 않고 38년을 평교사로 학교에 있었다. 그가 한창 문단에 이름을 떨칠 때 들려오는 말은 그다지 좋은 것들이 아니었는데 주로 독불장군이다거나, 전교조에 우호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말들이었고 난 그때나 지금이나 시인을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몹시 협소하고 쪼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시인은 다르게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일진데 오히려 그의 까칠함이 멋져 보이기까지 했다. 다만 그의 시에 대해 깊이 감동받지는 못하였으니 순전히 나의 얇음 때문이었다.

 

2020년 김용택
그해 8월에 있었던 마지막 수업 장면이 지상 중계되었는데 그다운 마침이었다.
“야들아, 느덜이 하도 징글징글하게 말을 안 들어서 나 인자 핵교를 그만둘란다! 인자는 느덕 그만 가르칠라고 헌단 말이여이, 알어? 아니다. 너그들이 울깜이 그냥 거짓말로 혀본 소리여. 요상시럽게도 말여, 인자 떠날랑게로 너그들한티 내가 잘못을 너무 많이 헌 것 같어진다. 미안혀, 증말로 미안혀잉?”
퇴임 후 활발하게 시집과 책을 내고 방송과 신문에서도 심심찮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최근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 [건축탐구 집]에 그의 집이 소개되어 재미있게 보았다. 역시나 그의 옛 집 터에 아담한 작업실과 예쁜 집을 지어놓고 지금도 섬진강과 학교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예전처럼 학교에는 아이들이 없어서 마을은 더없이 심심하다. 최근에 나온 시집 [은하수를 건넜다]에 실린 「심심한 우리 동네」를 보자.
우리 동네는 다 심심하다/커다란 느티나무도 심심하고/징검다리도 심심하고/넓은 강변도 심심하고/노랗게 익어가는 살구도/심심해서 살구를 하나/툭! 떨어뜨린다

 

힘센 김용택 / 공선옥
나는 그가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정다움, 그 격의 없음, 그 경계심 없는, 완전무장해제의 태도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고 있다. 그리고 또 나는 그 정다움, 그 격의 없음, 그 완전무장해제의 삶의 태도, 다시 말하면 온전히 자신을 드러내도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실은 얼마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중략) 김용택의 순정은 바로 그 강, 그 산, 그 들, 그 사람들 속에서 그가 울고 웃고 침묵하면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것이기에 힘이 셀 수 밖에 없다. 한국에 김용택이 있으므로 나는 한국을 떠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김용택이 없으면 몰라도.(27쪽)
김용택의 [그 여자네 집]과 [사랑]을 몇 번이고 읽고 있다. 나도 그가 시골 학교 선생이었기에, 촌에서 시쓰기를 멈추지 않았기에 좋다.


2020년 10월 4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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