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시가 내게로 왔다

짱구쌤 2020. 9. 6. 23:09

삶이 어찌 이다지 휘몰아치며
[시가 내게로 왔다 / 김용택 / 마음산책]

임방울 / 송찬호
~삶이 어찌 이다지도 휘몰아치며 도도히 흘러갈 수 있단 말인가

커다란 산맥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이기며 오라, 삶이여! 부서지며 굽이치는 저문 강을 건너 새벽같이 오라. 언젠가, 그 언젠가 한번은 꽃피고 싶은 내 인생이여!
-김용택

꽃씨를 거두며 / 도종환
언제나 먼저 지는 몇 개의 꽃들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이슬과 바람에도 서슴없이 앞을 던지는, 뒤를 따라 지는 꽃들은 그들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며 사랑한다는 일은 책임지는 일임을 생각합니다. 사랑한다는 일은 기쁨과 고통, 아름다움과 시듦, 화해로움과 쓸쓸함 그리고 삶과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일이어야 함을 압니다. 시드는 꽃밭 그늘에서 아이들과 함께 꽃씨를 거두어 주먹에 쥐며 이제 기나긴 싸움은 다시 시작되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고 삶에서 죽음까지를 책임지는 것이 남아있는 우리들의 사랑임을 압니다. 꽃에 대한 씨앗의 사랑임을 압니다.

가을인가보다. 아이들과 함께 봄에 심은 꽃들이 꽃씨를 맺었다. 선생님, 생각만 해도 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좋다. 도종환 선생님이 좋고, 아이들 앞에 서있는 우리나라의 선생님들이 다 좋다. 선생님 앞에는 늘 머리통이 까만 아이들이 있으므로. 그래, 사랑은 그렇게 끝까지 책임을 지는 일이다.
햇살이 좋은 가을날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허리 굽혀 꽃씨를 거두는 선생님,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 도종환 선생님 사랑합니다.
-김용택

동해남부선 / 백무산
~ 누가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 가차는 떠나는데 / 봄볕이 그 아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히는데 / 누가 제발 저 아이 짐 좀 들어주오.
바보 같으니라고. 왜 서둘러 기차에서 내리지 않았는지, 잠시 내릴 역을 잊었던 것처럼, 헛기침 두어 번 하고 버스 정류장까지 짐을 들어준 뒤, 다음 기차를 기다려도 여전히 한 생인 것을..., 추억과 연민이 함께 봄 햇살을 받는 핍진한 생의 아름다움이여.
-곽재구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 "당신이 필요해요." /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혁명 시인, 전사 김남주에게 박광숙이 그랬을 것이다. 10년 옥살이를 견디게 해준 그녀. 석방되자마자 달려온 시인을, 1989년 광주YMCA 무진관에서 12월 31일 처음 만났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당신은 묻겠는가, 그게 사실이냐고” 절규하던 시인과 함께 해돋이를 보러 무등산을 오르던 그날.
-이장규

거짓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브레이트의 위를 시를 확인하러 김남주의 오래된 시집을 펼치는 순간, 책갈피로 끼워진 메모지, 교대 앞 음악다방 [모데라토]의 음악 주문지. 때마침 나오는 재채기 세 번, 최루탄 가루일 거라고 확신하는.
2020년 9월 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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