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아웃 오브 아프리카

짱구쌤 2021. 2. 7. 13:43

나이로비의 거리들이 없다면 세상은 없다

[ 아웃 오브 아프리카 / 카렌 블릭센 / 열린책들 ]


30호, 우린 그 자체로 빛나♬

두 달여 가장 큰 즐거움은 30호 가수에 대한 덕질이었다. TV 가요 경연무대에서 우연히 본 30호를 찾아 유튜브 영상을 섭렵하고 매일 출퇴근을 그의 노래로 보냈다. 가장 최근에 부른 노래는 BTS의 「소우주」 ‘우린 그 자체로 빛나♬’ 가사를 몇 번이고 따라 부른다.
두 번째 즐거움은 이 책을 아껴 읽는 것, 진짜 아껴 읽었다는 표현이 딱이다. 로버드 레드포드와 메일 스트립의 영화 속에서 아름다운 배경으로 존재하던 아프리카를 주인공으로 세운 원작. Out of Africa always something new. 아프리카에서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에서 따온 제목처럼 그 자체로 빛나는 아프리카를 보여준다.

 

문명인의 시선, 다른 이의 긍지를 사랑하려

덴마크 태생의 저자가 귀족과 결혼하여 건너간 아프리카에서 커피 농장을 하며 살았던 17년간을 기록한 글이다. 노벨문학상에 두 번 후보에 올랐고 그때마다 강적(?)들에게 영광을 빼앗겼으니 그들은 헤밍웨이와 카뮈다.
‘야만인은 자신의 긍지를 사랑하고 타인의 긍지를 증오하거나 부정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 ‘나는 문명인이고자 하며 나의 적과 하인들, 연인의 긍지를 사랑하려 한다. 그리고 우리 집은 아주 겸허하게 황무지에 존재하는 문명화된 장소가 될 것이다.’ 원주민(키쿠유족, 마사이족, 소말리족), 얼치기 문명인, 그리고 야생동물들까지 작가의 시선은 늘 한결같다. 그들의 긍지를 사랑한다. 유럽의 그것에 비해 도시랄 것도 없이 보이는 1920년대의 나이로비를 거닐며 몇 번이고 생각한다. ‘나이로비의 거리들이 없다면 세상은 없다’ 그간 수없이 마음에 담았던 ‘두발 굳게 딛은 땅’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황풍년의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오르한 파묵의 「이스탄불」까지. 지금, 이곳에서, 이들과 도모해야 한다.

 

존재의 상실도 이처럼 우아하게

영국인 버클리와 그의 연인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 역)는 그의 집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 시드니 폴락의 영화 속 아름다운 두 연인 이야기는 원작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는다. 몇 번 다녀간 손님처럼 덤덤하게 그려 내다가 극적인 그의 죽음(비행기 사고)에서야 애절한 러브스토리를 잠깐 엿볼 수 있다. 아프리카를 그 자체로 사랑했던 존재 중 또 다른 한 명이었던 버클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를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떠난 아프리카에서 몇 가지 기준들이 낮아졌는데 우선 위트의 기준이 낮아졌고, 용감성의 기준과 인간성의 기준도 낮아졌다고 했다. 참 품위 있는 문명인의 헌사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니 나는 부재에 이르러서야 조금 깨닫는다. 조공례와 박병천 명인의 부재로 진도소리의 아름다움을, 대통령 노무현과 김대중의 부재로 아름다운 리더십을, 지식인 리영희와 신영복의 부재로 스승을 아쉬워한다. 하여 남은 시간에는 더욱 더 더 사랑해야 한다.

 

달이 최선을 다할 때와 허송세월

저자의 아프리카 생활 중 가장 크게 기억되는 일은 춤 축제 ‘은고마’일 듯 싶다. 우리가 아는 열정적인 아프리카 춤의 끝판왕 쯤 되는 이 달빛 축제는 며칠간에 걸쳐 이뤄진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당시 당국이 이를 금지했을 정도로 열정과 환상의 절정이었다 한다. ‘그들은 보름달이 떴을 때만 은고마를 열었다. 달이 최선을 다할 때 그들도 그렇게 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은하면서도 강력한 빛 속에서 아프리카의 풍경이 헤엄칠 때 그 거대한 조명에 작은 불빛을 보탠 것이다.’
30호 가수의 이름은 알라리깡숑이라는 밴드의 보컬 이승윤이다. 10여년의 무명 생활이 오롯이 기록된 유튜브 영상 속 그는 참 멋진 청년이었다. ‘울지 말아요/아니 울어도 되요/오늘 하루 힘내요’에서부터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나는 노래들을/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까지 자신의 소우주에서 충분히 자유롭고 행복해 보였다. 그 중 ‘달이 참 예쁘다고’는 절창이었는데 ‘숨고 싶을 땐 다락이 되어 줄거야/죽고 싶을 땐 나락이 되어 줄거야/울고 싶은만큼 허송세월 해 줄거야/진심이 버거울 땐 우리/가면 무도회를 열자/달 위에다 발자국을/남기고 싶진 않아/단지 너와 발 맞추어 걷고 싶었어’ 허송세월을 저리 멋지게 표현한 아티스트라면 하루 한 시간 이상의 덕질도 전혀 아깝지 않았다.

 

오래된 미래

지금의 학교에서 앞으로 2년 정도 소요되는 큰 과제를 받아들고 상당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을 즈음에 만난 책이다. 미래, 혁신, 공간 등 만만치 않은 무게감에 맞서 자꾸만 새로운, 바깥, 특별함에 마음이 가던 차였다. 랜드 마크처럼 불쑥 솟은 것, 잘 알지도 못하는 미래말고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해보고 싶었던 것, 편안한 것에 집중할 여유를 갖게 되길. 우린 그 자체로 빛나♬


2021년 2월 7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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