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눈표범

짱구쌤 2020. 12. 26. 12:39

‘불확실성 안에서도 위엄 있게 살기’
[ 눈표범 / 실뱅 테송 / 북레시피 ]

잠복
영하30도 5천 미터 고지에서 언제 올지도 모를 눈표범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잠복이다.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3주간의 잠복을 통해 눈표범을 세 번 만났다. 세상을 지도 삼아 돌아다니기를 즐기던 저자가 말은 고사하고 움직임조차 멈춰야 하는 잠복을 견디는 것은 붓다의 고행만큼이나 고통스러웠으리라. 그렇게 얻은 깨달음은 ‘인내심이야말로 가장 우아하면서도 가장 망각하기 쉬운 최고의 미덕’이라는 배움이다.
2018년 1월 8일(?) 새벽, 영하 12도(순천에서는 경악할)에서 세 시간을 잠복한 적이 있다. 겨울의 진객, 흑두루미의 기상을 관찰하고 그 개체수를 세는 일에 함께했다. 이틀에 한 번씩 그 일을 하는 분 옆에서 보낸 세 시간은 꽤 고통스러웠으나 깨달음은 상당했다. 세상에 쉬운 일은 당연히 없고 흑두루미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는 것. 저자 역시 3주간의 짧은(?) 체험을 10년 이상 그 일을 하는 동료의 그것과 같은 ‘잠복’으로 표현하는 것에 내내 미안해했다. 나도 그랬다.

 

미적 감각과 30호
저자는 미적 감각을 ‘삶에서 느끼는 즐거운 신념’ 이라고 했다. 또한 예술적 시선을 ‘평범한 방패막이 뒤에 숨겨진 야수를 보는 것’ 이라 정의했다. 저자의 이런 정의내림이 퍽이나 신선해서인지 밑줄 치는 문장이 많고 접어 높은 쪽수가 부지기수이다.
좀 생뚱맞긴 하지만 요즘 즐겨 보는 ‘싱어게인’의 30호 가수를 보면서 ‘맞아, 즐거운 신념, 야수!’ 라며 무릎을 쳤다. 오디션 심사위원의 평처럼 어디 족보에도 없는 음악을 하는 30호 가수는 야수 같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그의 노래와 몸짓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려는 ‘즐거운 신념’을 갖게 되었다. 덕질이다. 열심히 30호의 과거와 현재를 쫓는 중이다.


저자의 예술적 시선에 대한 멋진 정의는 사실 아주 단순한 계기에서 내려진다. 친구가 찍은 야생 새 사진에서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던 눈표범을 티벳에 사는 어린아이의 눈에는 맨 먼저 보였다는 사실. 평범한 방패막이 뒤에 숨겨진 야수를 보는 눈.

 

증명할 필요 없는
제주에 정착해 사는 이방인의 푸른 눈에는 해녀라는 존재가 경이의 대상이다. 하여 “해녀는 페미니스트. 용감하고 당당하게 매일 매일 물질 나가는 해녀는 누구에게나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2019년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눈표범을 만나기 위한 단순한 관찰기에 이토록 열광하는 프랑스인들의 독서력에 한 번 놀란다. 나름 내린 이유는 이 책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소 난해한 동양 고전 ‘도덕경’을 배경삼아 노자의 도가철학을 해설한다. 그런데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우리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받아들이는 문제를 저자는 계속 설명하려 한다는 느낌이었다.
가령 무소유나 자연으로의 회귀를 범정 스님의 쉬운 글과 비교하면 불란서 저자의 수다가 유난스럽다. 익숙하지 않은 동양 철학을 이해시키려는, 아니 증명하려는 시도.

 

인간이 해야 할 의무
그런 수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펼치는 아름답고 깊이 있는 문장은 매력적이다. 이를 읽고 즐기는 그들의 사유도 부럽다. 극한의 환경에서 8년 정도를 생존하는 눈표범은 쟈크 샤르돈의 「창문 속의 하늘」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의무, ‘불확실성 안에서도 위엄 있게 살기’에 딱 들어맞는 존재다. 지금의 팬데믹도, 앞으로의 불확실한 미래에도 우리에게 필요한 의무, 위엄 있게 살기.
2020년 12월 2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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