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당신이 옳다

짱구쌤 2019. 1. 19. 22:40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당신이 옳다 / 정혜신 / 해냄]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선생님도 혼내기만 해서 얼마나 속상했는데, 엄마는 나를 위로해 줘야지. 그 애가 먼저 나한테 시비를 걸어서 내가 얼마나 참다가 때렸는데. 엄마도 나보고 잘못했다고 하면 안 되지.”

네 마음은 잘 알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마라고 말하는 엄마에게 초등학생 아들이 울면서 소리친다. 저자는 이 아이의 말을 공감의 헌장에 가깝다고 말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실시해야 하는 심리적 CPR(심폐소생술)이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땐 충조평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충조평판의 다른 말은 '바른말'이다. 바른말은 의외로 폭력적이다. 나는 욕설에 찔려 넘어진 사람보다 바른말에 찔려 쓰러진 사람을 과장해서 한 만 배쯤은 더 많이 봤다. 사실이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정)하지 말지어다. 바른 말도 그렇다. 주말에 만난 아내가 교섭 상대로 만난 아는 전교조 활동가들을 비판하자, 그만 참지 못하고 충조평판을 해버렸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인데도 말이다. 아내는 대화를 중단하고 안방에 들어가 버렸다. 밑줄까지 그어가면서 다짐했던 것인데 실천은 이리도 힘들다. 각고의 노력(?)으로 화해는 했지만 아내의 맘 그릇이 아니었으면 지금도 냉전이었을 것이다.

 

내 상처가 공감 받고 치유 받지 못했던 시간 동안 내 직업은 발을 빼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큰 고통이었다. 선배 의사에게 정신분석 상담을 받았던 몇 년의 시간이 도움이 됐지만 더 결정적인 건 상담실 카우치 위가 아닌 내 일상에서 그 시간의 백배도 넘는 시간동안 나의 스승이자 연인, 도반이고 반려인 남편에게 남김없이 공감 받은 경험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부럽고 놀라운 부분이었다. ‘정혜신도 상처를 받는구나같이 바보 같은 의문은 그렇다 치더라도 서로를 스승, 연인, 도반, 반려라 부르는 정혜신·이명수 부부가 놀랍고 존경스럽다.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제2, 3의 정·이 부부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나 역시 소박하게 설치한 시골집 난롯가에서 주말동안 나누는 대화가 그 어느 상담보다 소중하다고 느낀다. 온전히 일주일을 인정받는 다는 느낌 말이다. 아내도 그러기를 바란다.

 

타인을 공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는 공감까지 가는 길 굽이굽이마다 자신을 만나야 하는 숙제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난 사실 갈등이 많은 드라마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타인의 고통을 오래도록 듣지도 못한다. 혹여 그런 날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뒤척인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렴풋이 그 이유를 찾았다. 굽이굽이에 자리한 나를 만나는 일이 두려웠을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 길은 문제를 해결하며 한고비 한고비 넘는 스무 고개 같은 길이기도 할 것이다. 조금 더 정직하게 나를 마주해야 한다.

 

4가지, 6가지, 9가지, 혹은 16가지 유형으로 전 인류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기세로 사람을 분류하거나 같은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은 마치 비슷한 DNA를 가진 인간인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여러 유형론의 틀 앞에서 모든 인간은 유일하고 개별적인 존재라는 명제는 초라하고 부질없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점에서 심리적 유형론은 공감을 가로막는 적폐가 되기도 한다.

모름지기 여자란, 모름지기 장남이란, 모름지기 성직자란, 모름지기 학생이란. 우리 사회의 이런 집단 사고들은 자연의 곡선을 직선으로 밀어버리는 포크레인 같은 심리적 폭력이다.

예전부터 불편함을 느껴왔던 두 가지를 지적한다. 심리 검사에서 많이 활용하는 무슨 무슨 유형론이 그 첫째이고, 개별성이 거세된 집단(조직)우선론이 두 번째다. 심리검사 결과가 나오면 아이를 거기에 꿰맞추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파악했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내가 알고 있는 아이와의 간극은 설명하지 못했다. 그게 불안하고 초조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언제부턴가 조직을 앞세우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개인이 빠진 집단의 광기(혹은 관성)을 경계해야 한다.

 

일상의 외주화

어느 한 쪽도 지나칠 수 없었지만 저자의 이말 일상의 외주화는 두고 두고 새길 것이다.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딘가에 있을 전문가의 도움부터 구()하는, 직장의 과제를 머리 맞대고 해결하기에 앞서 컨설팅 같은 쉬운 방법부터 찾는 외주화는 필연적으로 를 소외시킬 것이다. 공감이 외주화 되고, 삶도 그럴지 모른다는 자각이다. 나에게는, 우리에게는 문제를 해결할 힘이 내재되어 있다. 정혜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당신이 옳다.” 온몸으로 말해준다.

 

다정한 전사, 정혜신

정혜신의 책은 나를 성장시키는 주요 포인트가 되어준다. [남자:남자]는 사람을 이해하는데 깊이를 주었고, [홀가분]은 비로소 에게 눈길을 돌리게 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가장 먼저 울기 시작해서 가장 늦게까지 우는 사람정혜신의 책을 어느 때보다 느리게 읽었다. 그녀가 다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327일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정혜신의 강연이 열린다니 꼭 가볼 생각이다.

2019119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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