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수인1,2

짱구쌤 2018. 12. 17. 18:16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가?
[수인1,2 / 황석영 / 문학동네]
 
오 년간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석방된 지도 무려 이십 년째 접어들었다. 돌이켜보면 한 해도 편안했던 적이 없지만 망명과 투옥의 기간은 수년 전에 고희를 넘긴 생애 속에서 그저 잠깐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 (에필로그)

[장길산], [객지], [삼포가는 길]에서부터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에다 나중에야 그의 기록으로 알려진 광주민중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와 북녘을 방문하고 쓴 [사람이 살고 있었네]까지 섭렵했으니 황석영 마니아라고 해도 손색없을 터이지만 요즘 황작가의 행보는 어지럽다. 각설하고.. 황석영은 정직하며 훌륭한 작가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가 북한을 다녀와서 감옥 생활을 할 때 그가 쓴 글을 가슴 설레며 읽었다. 1989년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난 그때 황작가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이 오랫동안 나와 그의 삶을 지탱해 줄 거라 생각한다. 그의 건투를 빈다. (2010년 9월 「강남몽」을 읽고)
아마도 이명박 정권 시절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황작가가 동행했던 것을 두고 변절이니 훼절이니 하던 때에 쓴 글이었을 것이다. 그때 난 분명히 그의 진정성을 믿었고 지금도 변함없이 그를 지지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황석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이 있다. 왼쪽과 오른쪽 균형을 잘 잡았기에/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이만큼이라도, 왔다 [낡은 자전거/안도현]


자유인 황석영
식민지 시절 만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유년을 보내고 가족과 함께 한국전쟁 때 월남하여 4·19와 5·18, 6월 항쟁을 겪고 방북, 망명과 귀국, 5년 투옥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삶은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이자 우리 문학사이다. 30대에 이미 [장길산]을 통해 거장의 길에 들어섰으니 40년 넘게 유명인으로 살아온 이력이다. 충분히 누리며 머물렀어도 충분할진데 당최 그럴 맘이 없다. 시인 김지하와 곧잘 비교되기도 하는 자유인 황석영의 기질이다. 어디서 들은 말이 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배는 그러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황작가에 이어 문익환 목사, 임수경, 문규현 신부의 연이은 방북은 6월 항쟁 후 통일운동의 불을 지핀 일대 사건들이었다. 뒤이은 황작가의 망명, 그리고 나온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를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새롭다. 흐릿하지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한 가지 “시어머니께도 동무라고 부르나요?” “그렇게 부르다가는 쫓겨나게요.”
방북 때나 망명 중에도 거침이 없다. 하지만 어느 한 편에 일방적으로 서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정쩡한 중도를 표방하지도 않는다. 좌우에 구속하기에 그의 그릇은 너무 커 보인다.


작가 황석영
자유인은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어도 가까운 이들을 늘 긴장시킨다. 특히 가족들은 그 자유로 인해 큰 아픔을 겪기도 한다. 예술가들의 가정생활이 순탄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장 보수적인 가족의 틀로 가둘 수는 없기 때문이다. 황석영은 작가일 때 가장 빛난다. 그의 수형 생활이 안타까웠던 것은 그에게 펜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이야기꾼(최고의 구라이기도 하고)이 벌써 일흔다섯이다. 난 노벨상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지만, 그것이 글쟁이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라면 황석영이 그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삶의 궤적이나 태도를 떠나 순전히 글로만 평가해도 그렇다. 진심으로 그의 남은 생이 평안하길 빌어본다.
2019년 12월 17일 이장규

'책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떨림과 울림  (0) 2018.12.27
방구석 미술관  (0) 2018.12.21
남아 있는 나날  (0) 2018.11.17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  (0) 2018.11.04
천상의 컬렉션  (0) 2018.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