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

짱구쌤 2018. 11. 4. 13:09

 

 

시인에게 최고의 무기는?

[별을 보러 강으로 갔다 / 정양주 / 문학들]

 

환하면 끝입니다

하늘이 두 뼘쯤 되는 산골짜기 집 마당에

백 촉짜리 백열등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저 집에서 다시 불빛 새어 나올 일 없습니다

장독대 항아리들 다시 빛날 일 없습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을 엉덩이 없습니다

시골집 환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마지막 불빛입니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밝히는 마을 사람들의 저 불빛이 꺼지고 나면 그 집에 더는 따스한 숨결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폐허, 폐교, 낙엽, 마른 새 등 소멸되어가는 것들도 기억이 남는 한 사라지는 것은 없구나를 철석같이 믿는 사람이 있다. 저자의 대학 선배 곽재구 시인은 시인에게 최고의 무기는 안쓰러워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사람에 대해, 아니 사람 아닌 것에도 안쓰러움을 간직한 체 30년 넘게 쓴 시를 이제야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낸 사람이다.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

내가 생각하는 시인의 최고 무기는 부끄러움이다. 시인은 백남기 농민의 노제 행렬을 따르면서 슬픔보다 부끄러움으로무거워진 다리지만 부드럽게 가벼워져야 한다/아직은 이 거리를 걸어야 한다며 금남로를 걸었다고 썼다.

이 작은 산속에 들어앉아/우리들의 나라, 우리들의 세계에서/내가 나를 추방시키고/이런 편안함이 불안하면 가끔/꽃 지는 시늉으로/고개 흔들어 털어내면서/자갈돌이나 툭툭 차면서 (봄날이 간다 )

화순에서 태어나 국문과를 나와 교사가 되고, 해직과 복직을 거쳐 30년간 변함없이 학교와 사회에 대한 연민을 감추지 않았던 시인은 지금 구례 작은 중학교에서 가르치고 시를 쓴다. 노숙투쟁, 고공농성으로 세상이 시끄러움이 지리산 자락 작은 학교까지 온전히 닿을 수는 없어도 시인은 부끄럽다.

새벽이 되도록 불 밝힌 학교 기숙사/충혈된 눈망울에/나는 깨알 같은 변명을 쌓고 있다(잠들지 못한 밤 )

채 꿈을 펴지도 못하고 세상을 뜨는 아이들 뉴스를 접한 날 눈은 내리고, 기숙사에서 밤을 밝히는 아이들의 삶에 무력하게 깨알 같은 변명만 늘어놓는 자신이 부끄럽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

역사가는 폐허에서 히스토리를 읽고, 예술가는 폐사지의 미학을 이해하고, 시인은 빈들에서 지난 시간과 다가올 시간을 그려야 한다고 믿는다.

달이 지니 마을의 불빛이 밝아진다/꽉 찬 어둠 속에 들이 점점 넓어진다 (빈들 )

빈들을 무엇이 다시 채울 것을 걱정하지 말라 한다. 얼어 죽지 않은 뿌리가 씨앗을 밀어 올리고 숨겨지거나 날아온 씨앗이, 새 장화를 신은 사람이 지나갈 터이니 말이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것들과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다. 그의 시 어느 곳을 펴더라도 사람과 인연이 스며있다. 시인과는 13년 전 처음 만났다. 동안에 선한 인상과 말투는 여전해서 오랜 시간 만에 만나도 늘 반갑고 오지다. 30년 만의 첫 시집, 설레발에 달뜨고 조급한 자신을 들여다보게 한다. 더 삭혀야할 듯.

2018114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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