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산사 순례

짱구쌤 2018. 10. 9. 21:11

 

 

나의 무위사(無爲寺) 답사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 유홍준 / 창비]

 

첫 만남

100만부 넘게 팔린 유홍준 신드롬에 편승해서 책을 읽고, 무위사는 반드시 찾아가 봐야 할 그 어떤 곳이 되었다. 19954년여의 섬 생활을 마치고 상륙한 영암에서 2010년 순천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무위사는 나만의 절집이었다. 월출산 아래 영암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무위사를 수십 번은 가보았을 것이다. 국보와 보물을 다수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입장료를 전혀 받지 않은 희귀함도 보태져서 그 횟수는 더 늘어났다. 처음에는 유홍준의 권유대로 저녁 예불 시간이나 비오는 날의 호젓함을 즐기러 갔었지만 점차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게 되었다. 손님을 만나면 마치 내 집처럼 무위사로 모셔가곤 했다. “, 무위사에 가까이 사는 사람이야.”

 

남도답사일번지 강진 무위사

저자가 가장 사랑한 남도의 절집은 무위사와 선암사 정도일 것이다. 무위사가 첫사랑이나 옛 애인쯤 된다면 선암사는 지금 함께 사는 아내쯤 될 거라 생각해 보았다. 무위사는 꾸미지 않은 소박함과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연상되는 절집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는 비오는 날 아침이나 오후라야 더욱 무위사다웠다. 지금이야 중창불사로 여러 전각들이 많이 세워졌지만 당시만 해도 손으로 세어볼 만큼 작은 절집이었다. 해탈문, 극락보전, 명부전, 천불각, 산신각, 요사채와 벽화보존각, 스님방이 전부였다. 혼자서 가면 종무소 옆에 있던 자판기 커피를 빼서 팽나무 그날 아래에 앉아 극락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돌아오곤 했으며, 집사람과 함께 가면 찻집 [무위다원?]에서 솔잎차 한 잔을 마시고 왔다. 부부가 걱정했던 것처럼 찻집이 문을 닫았을 때에는 어찌나 아쉽던지, 지금도 추운 겨울날엔 그 찻집의 따스했던 난로가 그립다.

 

 

당당한 극락보전(極樂寶殿)

국보 제13. 1446년 이전 건립. 주심포 맞배지붕의 잘생긴 조선 초기 목조 건물이다. 부석사 무량수전 이후 양식을 대표한다. ‘단아하다라는 표현을 쓰기에 딱인 건물이다. 일체의 장식성이 배제되고 짜 맞힌 부재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옆면은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다. 외벽을 다 바르고 미장하는 현대의 건축물에서는 보기 힘든 자신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570년이 넘게 서있는 것이다. 극락보전에 가면 안으로 들어가 삼배를 드리고 불전함에 성의(?) 표시를 한 후, 두 손을 합장하고 아미타삼존불상 뒤편으로 걸어가면 백의관음상을 알현할 수 있다. 무위사의 오랜 지기만이 알 수 있는 팁이다. 같은 국보이지만 나 역시 유홍준처럼 영암 도갑사 해탈문(50)의 가치에 수긍할 수 없다. 건축학적 희소성을 백번 양보한다 해도 건물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생기지 않는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어디에서 보든, 언제 보든 당당하고 의젓하다.

 

나머지 즐거움

극락보전을 충분히 즐기고 나면 나머지 즐거움을 찾아 나설 차례다. 명부전에 들러 염라대왕을 찾고, 산신각에서는 인간이 못된 호랑이를 연민하면 된다. 천불각으로 가는 돌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나면 동자승들의 향연 천불각에 이른다. 옆에 있는 한 칸 자리 오두막에 걸터앉아 무위사의 자리앉음새(로케이션)를 살핀다. 여유가 있으면 벽화보존각에 들러본다. 물론 이것은 중창불사가 있기 전의 무위사를 말한다. 지금은 상당히 많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예전의 호젓함은 사라졌지만 극락보전과 팽나무가 있는 앞마당은 여전히 무위사답다. 무위사를 나와 일부러 월출산 자락을 끼고 돌면 보성차밭이 무색한 월출산 다원을 만날 수 있다. 그 또한 무위사를 찾는 다른 즐거움이다.

 

한정식 유감

이 책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전의 답사기에서 사찰 부분만 발췌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산사 7(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봉정사, 부석사, 통도사)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서 발행한 책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흩어져있던 사찰 관련 글을 묶어 놓아 좋겠다 싶어 구입했는데 생각만큼은 아니다. 한정식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산해진미가 한상에 다 올라오니 젓가락 가기가 힘들기도 하고 귀한 줄도 모르는 격이다. 좋은 경치도 매일 보면 뉘가 난다.

2018109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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