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역사의 역사

짱구쌤 2018. 9. 2. 21:58

 

 

모든 역사는 현대사

[역사의 역사 / 유시민 / 돌베개]

 

최악의 여름이 진다

이번 여름은 최악이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그 중심에 있었고 온전히 방학을 기다려온 기대에 찬물이 끼얹어졌기 때문이다. 폭염이야 에어컨과 샤워의 도움을 받으면서 넘길 수 있었겠지만 방학 도둑은 그야말로 분통 터지는 일이었다. 갑작스런 일로 방학이 사라지자 방학으로 몰아놨던 책읽기와 쓰기도 지체되었다. 그래서 이제야 겨우 이렇게 책 한권을 마치고 글을 쓴다. 하지만 폭염도 태풍이 지나자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체 물러가고, 새로운 일자리(?)도 이력이 생기면서 글 한 줄 쓸 여유가 생겨난다. 본디 원했던 바대로는 아니겠으나 그런대로 살아진다. 어디 사는 것이 마음대로 되었던가?

 

역사란 무엇인가

보통의 남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역사를 좋아한다. 아니 역사이야기를 좋아한다. 있었던 사실도 재미있지만 그 곳에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는 역사가의 상상력과 서사(구라?)를 더 재미있어한다. 저자인 유시민도 그렇다고 하니 나만의 독특함은 아닌 것 같다. 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직 사실(문헌)만이 역사라고 주장해 온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를 역사가를 문헌학자로 취급한다며 비판했다.

이 시대의 글쟁이 유시민은 동서양의 역사가들을 소환하여 그들이 역사관과 서술 방식을 이야기한다. 서구 역사의 창시자인 헤로도토스부터 중국의 사마천, 아랍의 이븐 할둔, 랑케와 마르크스, 그리고 박은식, 신채호, 백남운을 거쳐 H.카와 토인비, 총균쇠의 제러드 다이아몬드, 마지막으로 사피엔스의 하라리까지 종횡무진이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쓴 역사는 현재와 조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여 이탈리아의 역사가 크로체가 선언한다.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정권에서 국정교과서에 집착하던 이들을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과거의 오명을 바꿔보려는 현재의 시도는 집요했으나 민중은 개돼지가 아닌 것을 늦게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이 그들의 패착이었다.

 

사실과 진실

유시민은 신채호가 식민지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뛰어난 역사가가 되었을 거라며 애석해한다. 신채호가 역사를 쓰는 것에 집중하지 못하고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게 한, ‘시대가 비튼인생을 한탄한다. 유시민도 그럴 뻔 했다. 유시민은 시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훌륭한 학생운동 지도부였지만 명문으로 길이 남을 항소이유서를 쓴 빼어난 글쟁이였다. 그가 오랜 동안 글을 쓰지 못한 것이 한국의 현대사였으며 다행히 지금 그는 종횡무진한 활약으로 우리 역사의 진전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주로 있었던 사실에만 집중하며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에는 둔감한 편이다. 신영복 선생은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텍스트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유시민도 역사가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며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유시민처럼

유시민의 글을 쉽고 재미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에 이끌렸던 청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그것이 사회주의 국정교과서인줄 몰랐노라며 고백을 했고, 토인비의 저 유명한 선언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 박정희가 좋아했던 경구라며 그 저의를 의심한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한 후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을 추진했던 박정희 정부의 권력자들은 토인비의 역사 이론을 두 팔 벌려 환영했다. 자기네가 바로 '창조적 소수자'이므로 '비창조적 다수자'인 국민이 믿고 따라 주기만 하면 '민족중흥'의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 이론을 국정 교과서에 싣고 각종 시험의 문제로 출제하게 하는 바람에 19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우리 세대는 토인비의 역사 이론을 달달 외워야 했다. (260)

80년대에 학교를 다닌 내가 알 수 없었던 일들이다. ‘도전과 응전참 멋진 말이라 환호성을 지를뻔 할 때 유시민이 죽비를 내려친다. 깨어있으라!

최악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기분 좋은 가을이 올 것이다.

201892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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