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그림은 위로다

짱구쌤 2018. 6. 9. 10:09

 

 

알고 있는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그림은 위로다 / 이소영 / 홍익출판사]

 

모지스 할머니 광팬

아트메신저라고 불러달라는 저자는 모지스 할머니의 작품을 좋아한다. 75세 때 부터 붓을 잡고 30년 가까이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이 풍속화가(?)의 그림은 100년 전 미국인들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작가는 위로받고 싶을 때 할머니의 그림을 찾아본다고 한다. 늦깎이 삶의 이력에다 그림 자체가 주는 풍성함이 더해져 그 어떤 명화보다 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모르는 것까지 알게 된다는 램브란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한다. 우울할 때, 혼자 있고 싶을 때, 방황할 때, 가족이 그리울 때, 불안할 때, 쉬고 싶을 때... 자신이 지금껏 보아왔던 그림에서 답을 찾아 오래 들여다보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프리드리히. 1818)

처음에는 파도가 부딪히는 바위에 서 있는 줄 알았다. 몇 년 전 읽은 김선현의 [그림의 힘]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안개바다가 펼쳐진 산의 정상이다. 그림의 해석도 다르다. 앞의 책에서는 파도로 대변되는 대자연에 맞서는 당당한 인간의 의지를, 저자는 거대한 자연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부각시킨다. 둘 다 일리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내의 뒷모습이 밟힌다. 그가 부디 굴복하지 않기를, 방랑을 마치고 어딘가에 정착하기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1970)

고교 미술교과서에서만 보았던 추상 화가를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고향 안좌도에서 보냈던 2년 때문이었다. 사택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던 수화의 생가에서 놀다왔던 기억이 따뜻하다. 교수직을 버리고 홀연 미국 유학을 떠나 고국의 벗들을 그리워하며 그렸다는 작품. 수많은 사각형과 점들을 채워가면서 떠올렸을 사람과 기억들에 이르면 마음 한켠이 아릿하다. 김광섭의 시에서 따왔다는 제목이 아니었다면 난해한 기호로 그쳤을 그림인데, 재작년에 들른 수화미술관에서 비슷한 그림들을 보면서 추상화도 결국은 인간의 마음을 그리고 있다는 쉬운 진리를 깨달았다.

 

자화상 (윤두서. 1700년경)

고흐, 램브란트, 이중섭, 천경자 등 수 많은 자화상을 남겼지만 이만큼 강렬한 그림이 있을까? 허공에 뜬 얼굴(나중에 정밀 촬영으로 옷주름이 나타났지만), 호랑이 수염, 무엇보다 정면을 응시하는 부릅뜬 눈. 정쟁을 피해 고향 해남으로 내려온 백면서생이 흙과 사람에 단련되어 이제 한양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단호함이 묻어난다. 유지하고 지키려는데 혈안이 된 중심부에서는 결코 그려지지 않을, 변방의 힘이자 자존심이다. 뚫어지게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너는 부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2018610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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