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어린왕자

짱구쌤 2018. 6. 7. 22:39

 

어딘가에 샘물이 숨겨져 있을까?

[어린왕자 / 생텍쥐페리 / 인디고]

 

영화나 드라마를 끝까지 보지 못한다. 갈등 상황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하여 갈등이 생기면 문제를 단순화하려고 한다. 의중이나 이면을 생각하지 않고 나타난 현상과 팩트에 집중한다.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다는 비판을 면키 힘들지만 나름 터득한 생존법이다. 상황에 직면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견뎌내는 경험이 부족한 어린왕자의 한 단면이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이 멈춘 부분이 있다. 내게는 갈등이 그렇다.

 

내 비밀을 말해 줄게. 비밀은 아주 단순해. 그건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대학 신입생 시절 누군가에게 받았던 편지에서 발견한 구절이다. 그때는 말장난이라고 생각했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당시의 나는 너무 강퍅했다.

 

사람들은 서둘러 특급열차로 몰려들지만 자신들이 뭘 찾으러 가는지 알지 못해. 그래서 그들은 분주히 움직이지만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거야.

그래서 삶의 방향(세계관)을 분명히 하고 힘차게 나아갔었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달려가는 동안 머뭇거리거나 바쁘기만 한 사람들이 보이면 제자리를 맴돌기만 하는 소시민이라 폄하하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나는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어요. 그래서 매일 물을 주죠. 화산도 세 개나 가지고 있는데, 매주 분화구를 청소해요. 휴화산이라도 청소해 줘요. 언제 다시 불을 내뿜을지 모르는 일이거든요.

몇 차례 읽을 때마다 꽂히는 곳이 다른데, 이번에는 이 구절이다. 그래서 매일 물을 주는 일상이, 언제 불을 뿜을지 모른다는 기다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열 네 개의 휴화산을 살피는 일상이 조금 더 부지런해야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물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어딘가에 감춰 놓았을 샘을 찾으러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었고, 작렬하는 태양에 헛보이는 신기루를 오아시스라 단언하며 짐짓 의연한 척 뻐기기도 했었다. 샘이 아니어도 아름다울 수 있는 온전한 사막을 보아야 한다. 그곳에서 샘에 기대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들을 경배하고 겸손하게 살아갈 지혜를 구해야 한다. 사막을 숙명으로 살아가는 베두인처럼.

201867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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