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땅의 예찬

짱구쌤 2018. 5. 1. 21:30

 

 

그래, 그거야!

[땅의 예찬 / 한병철 / 김영사]

 

피로사회 이후

일요일은 안식일이다. 모든 염려에서 해방되는 일요일은 막간의 시간이다. 목적 행위의 날이 아니라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이다. 난 지난 한주 너무나 많은 염려에 분주하였다. 너무 활동적이었고 모두에게 영감을 주는 활동성을 보여 주었으며 더 잘할 수 있다는 긍정성의 과잉이었다. 그로 인해 너무 피로하였고 간절히 무위의 일요일을 기다렸다.(2012513일 이장규)

후배 선생님의 권유로 읽은 저자의 책 [피로 사회] 서평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성과와 규율 사회에 대해 경종을 울리며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했다. 이 책은 말하자면 철학자 자신의 주장에 대한 실천기이다.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정원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3년 동안 가꿨던 정원을 이야기한다. 생전 처음 파보는 땅이었을 이 회색의 인텔리가 자신의 영토에서 몸의 느낌을 되찾고 자유를 만끽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아무 구속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내게 자유란 지금으로서는 정원에 머물기라는 뜻이다.(p.152)

마침내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지옥 같은 콘크리트 황무지 서울에 있는 동안 꽃피는 정원이 몹시 그리웠다. 생각은 늘 그곳에 있었다.(p.131)

 

모니터보다 더 많은 세상을 담고 있는 정원

우리는 오늘날 모두 특별한 존재이기에 할 말이 너무 많고, 소통할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고요함과 침묵을 잊었다. 나의 정원은 고요함의 장소, 정원에서 나는 고요함을 만든다. 나는 휘페리온처럼 귀 기울여 듣는다.(p.146)

책은 수많은 꽃과 나무의 향연이다. 초보 정원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데 철학 공부처럼 정원을 섭렵해가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다. 난 한 평 남짓한 아파트 베란다 정원을 하루에도 수차례 찾는다. 심심할 때, 답답할 때, 기분 좋을 때, 심란할 때 등등.

정원 일은 일이 아니라 명상이며, 정적 속에 머무는 일이다.(p.175)

우리는 점점 더 현실에서 멀어진다. 나의 정원은 내게는 다시 찾은 현실이다.(p.148)

릴케, 헤세, 하이데거 모두 정원을 사랑했다. 그곳에서 보고, 걷고, 돌아보며 자신과 세상을 내다봤다. 디지털화가 소통의 소음을 높일 때(147) 모니터와 렌즈에 빼앗긴 현실성을 되찾는 길이 바로 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심한다

오늘 아름답지 않은 세상과의 일이 너무 많아 월식을 놓쳤다. 얼마나 어리석은지!(p.174)

이 글 전체를 통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철학자 한병철이 무척 가깝게 느껴지고 그의 글을 신뢰하게 한다.

우리 부부는 올 봄에 일을 저질렀다. 10여 년 고대했던 일을 마침내 결행했다. 주말마다 그 거사에 만족하며 새로운 구상에 몰두한다. 다른 버전을 쓰고 싶었던 차였다.

니체는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며,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것이 고상한 문화라 한다. 인간은 어떤 자극에 즉시 반응하지 않고 속도를 늦추고 중단하는 본능을 발휘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고도 했다. 한병철의 서평을 쓸 때에는 맥주가 필요하다. 2012년에도 그랬고 오늘 운동회를 마치고 조퇴해서 보내는 느긋한 저녁도 그렇다.

201851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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