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6과학콘서트-정재승

짱구쌤 2012. 12. 30. 22:17

 

 

복잡한 세상 & 명쾌한 과학

[과학콘서트 / 정재승 / 동아시아]

 

과학을 참 싫어했는데 이과에 갔었다. 수학 하나만 믿고. 결과야 보나마나 헛발질. 그래도 과학과 친해지고 싶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시험성적에도 좌절하지 않고 이후 줄기차게 과학 동네를 기웃거렸으나 결과는 예외 없이 절망과 좌절뿐. 너무 어려워서 매번 과학 관련 책을 고를 때는 “알기 쉬운, 청소년을 위한, 재미있는~”을 기준으로 골랐는데 끝까지 이해하며 읽은 책은 거의 없었다. 과학은 내게 넘을 수 없는 벽인가?

 

정재승의 책은 달랐다. 그가 고등학교 다닐 때, 문득 천안문 사태 신문 기사를 한 달 지난 뒤에 보았는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사건도 사건이지만 그런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신은 아무 것도 모른 체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과, 그와 동료들(과학고, 카이스트)이 공부하는 물리학이나 지구과학이 우리가 사는 현실과는 머무나 동떨어져 있다는 것에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물론 나의 2MB 두뇌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하는 과학의 탈현실화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을 아닐까? 하여간 정재승의 책은 달랐다. 쉽게도 썼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사는 이 복잡한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과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앞서 읽었던 [배신]이라는 책에서 강사로 나온 정재승 교수의 이야기에 공감하다가 검색해서 찾은 책이다.

 

이 책의 근간을 이루는 과학적 개념은 “카오스 이론”으로 대표되는 ‘프랙탈’이다. 베이징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서의 폭풍을 유발할 수 있다는 카오스 이론은 원인 행위의 작은 변인이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복잡성 과학을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된다. 자연은(세상은) 복잡하지만 나름대로의 규칙성이 있다고 전제한다. 프렉탈은 미세한 부분이 전체구조와 유사한 구조를 무한히 되풀이하고 있는 양상을 말한다. 자연의 패턴이 보이는 중요한 특징이다. 예를 들면 복잡한 해안선을 자세히 확대해서 보면 그 것과 비슷한 작은 선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고, 나뭇가지와 잎의 모양이 비슷한 모양으로 반복되며, 조개껍질의 무늬도 전체 모양과 비슷한 작은 무늬의 연속임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랙탈 이론을 통해 금융시장의 요동, 산사태의 예측, 복잡한 교통체증에서의 차선 선택, 마피법칙의 필연성 등 흥미로운 소재를 이론적, 실험적으로 증명해 나간다. “아하, 그렇구나” 하는 끄덕임이 반복되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재미있는 사실을 몇 가지 소개하자면, 저자는 미국에서 있었던 세기의 재판 O.J 심슨 사건은 명백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재판관의 확률통계 이해로 무죄가 된 사건이라 정의하고 있다. 부인을 살해한 염의로 재판을 받은 미식축구 슈퍼스타 심슨은 현장에서 발견된 같은 치수의 신발자국, 같은 DNA 혈흔에도 불구하고 변호인이 제출한 논리 “남편에게 매 맞는 아내가 남편에게 살해될 확률은 0.03%, 같은 DNA를 가질 확률은 1/10,000, 같은 신발치수를 가질 확률1/10,000 등”에 재판관들이 손을 들어 무죄가 선고되었다. 저자는 이는 명백한 확률통계의 오류라고 하면서 “남편에게 매 맞던 아내가 죽었을 때 그 남편이 살해할 확률은 80%, 같은 치수, 같은 DNA, 손목에 상처 입을 사람의 확률은 따로 따로 계산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일어날 확률로 다시 계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유죄라고 한다. (난 그냥 봐도 유죄인데.._) 저자는 과학이 세상일을 해석하고 적극 개입할수록 미래의 불확실성은 많이 제거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곳에서 그렇게 되고 있다.

 

저자는 잘못된 과학 상식에 대해서도 말한다. 미국의 한 토크쇼 진행자의 발언으로 지금은 사실처럼 인식하는 “달에서도 만리장성은 보인다”라든가, “인간은 자신의 뇌 10%도 이용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도 15%밖에 이용하지 않았다”라든가, “보른달이나 그믐달이 뜬 날 살인사건이나 자살이 많이 일어난다”는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잘못된 사실에 근거해서 해법을 찾으면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대신 우리가 우스개처럼 하는 말이 과학적으로 사실로 증명되는 경우도 말한다. 가령 ‘웃음은 전염된다’라는 말은 명백한 과학적 사실이다. 1962년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한 여자고등학교 기숙사에서 30명의 학생이 웃음을 참지 못하는 병에 걸려 전교생 98명으로 확산되어 두달 반 만에 학교가 문을 닫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집으로 돌아간 이 학생들로 인해 마을 주민 1,000여명이 2년 동안 전염되어 6개월간이나 이 사태가 지속된 일은 웃음의 전염성을 극렬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한다. “인간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이 더 과학적이라고 한다.

 

정상인들의 심장 박동과 질환을 앓고 있는 심장의 박동은 누가 더 규칙적일까?

상식과는 반대로 정상인들의 박동은 불규칙적인 반면에 질환을 앓고 잇는 사람들의 박동은 일정하다고 한다. 정상인들의 심장은 몸의 상태, 심리적인 요인들과 결부되어 불규칙적으로 뛰면서 비상사태에 적극 대비하는데(가령 혈액이 부독하면 심하게 뛰는 것처럼) 이상이 있는 심장은 면역능력을 상실한 체 그냥 일정한 박동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명체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불규칙적이며 유연하고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며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은 죽음으로 가는 진혼곡”이라는 다소 살벌한 명제를 설파한다.

고착, 안정, 규칙 등 교육에서 많이 사용하는 카테고리가 혹시 펄펄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들에게 역동적인 시스템 구축을 가로막는 것은 아닌지 혼자 생각해봤다.

 

이 박에도 참 재미있는 주제가 많다. 과학이 주는 명쾌함, 어렵지만 다시 과학책을 찾게 해주는 좋은 책을 만났다.

2011. 8. 6.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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