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4이 영화를 보라-고미숙

짱구쌤 2012. 12. 30. 22:14

 

 

인문학과 영화, 그 어울림과 맞섬

[이 영화를 보라 / 고미숙 / 그린비]

 

 

매일 아침, 집 앞 호수도서관으로 출근해서 점심 먹으로 집에 잠깐 들른 후 다시 가서 퇴근 무렵에 온다.(아침에는 둘째 동현이도 같이 간다) 이번 주는 계속 그러고 있다. 방학 중 유일하게 비어있는 주이기도 하지만 원래 계획되어 있던 광주에서의 환경연수에 지명되지 않아 연수 받는 기분으로 도서관에 다닌다. 시원하고 좋다.

 

서울에 살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일 년에 서 너 차례는 서울에 가지만(물론 사적인 일은 아니다) 그때마다 막히는 교통, 답답한 공기, 무표정한 사람들을 보노라면 서울은 내가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매번 확인하며 내려오지만 살고 싶을 때도 있는데 주로 좋은 강연과 연수, 문화공연이 지천에 널려있다는 정보를 접할 때이다. 신영복님의 강연, 김재동과 윤도현 콘서트, 이철수 판화전시회, 그리고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인문학 강좌 등이 그것이다. 특정한 건물과 연구 집단을 가리키는 <연구공간 수유+너머>는 바로 이 책의 저자 고미숙님이 만들었다. 전에 읽었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고미숙]에서 <연구공간 수유+너머>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를 엿보았는데 거의 부데뽀에 가까운 그녀의 추진력에 혀를 내둘렀다. 필요한 것이 있으면 저질러 놓고 보는 배짱은 남성 100명 저리 가라다. 또한 그녀가 쓴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통해 그녀가 정말 대단한 필력을 가진 글쟁이 임을 확실히 알았다. 박지원과 노신을 동경하는 그의 글쓰기는 가히 전방위적이다. 막힘이 없고 경계가 없다. 그녀는 그것을 노마드라고 했는데 한곳에 정착하지 않은 유목민의 문화개방성을 뜻한다고 했다.

 

이 책 역시 노마드의 연장선에서 쓴 책일 것이다. 인문학에 웬 영화, 그녀도 책에서 밝혔듯이 별로 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연구공간 수유+너머>에 만들어진 영상집단과 자주 조우하다 보니 생긴 호기심과 관심이 이 책을 쓰게 된 동력이란다. 나도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흥행영화의 끄트머리쯤에 어쩔수 없이 본 영화가 대부분이다. 이유는 영화(드라마)가 주는 긴박감과 갈등, 잔인함 등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분명 유년기에 트라우마가 있을터인데 잘 모르겠다. 다행히 이 책에서 소개하는 영화 6편 괴물, 황산벌, 음란서생, 밀양, 서편제. 라디오 스타 중 밀양을 제외하고는 다 보았다. 밀양은 섬에 있을 때 개봉한 영화여서 보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그 스토리를 살펴보니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아 보지 않았다. 명랑, 유쾌, 코믹, 액션, 휴먼 정도에 위치한 영화만 골라 본다. 내 수준이 그렇다.

 

각각의 영화에 얽힌 인문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령 [괴물]에서는 위생권력의 막강함에 경악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물 분석이 흥미로웠는데 강두(송강호)의 야생성과 한때 운동권이었던 동생의 원시성이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바탕이라는 의견에 공감했다. [황산벌]에서는 진흙탕 전쟁, 방언의 역사성, 거시기로 대변되는 민중의 건강성을 장명마다 분석한 것이 돋보였다. 보성벌교 출신 백제군들의 걸죽한 욕지거리 중 “우리는 반 한번 먹는데 반찬이 40가지나 된다. **놈아!”에서는 까무러친다.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라디오스타]다. 지금도 주제곡인 [비와 당신]은 가장 좋아하는 노래다. 가는 곳마다 길이 된다는 유목민들의 문화가 최곤과 영월로 대변된다. 영원한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마지막 멘트 “근데 너 아니, 별은 말이지, 자기 혼자 빛나는 것은 없어. 다 빛을 받아서 빛나는 거야.”

 

저자 고미숙은 대단한 학자이며 기획자이지만 정말 잘 쓰는 작가다. 저자의 여러 책을 권한다. 이제 도시에 왔으니 영화 좀 봐야겠다. 어디 가서 대화가 안 통한다..

2011. 8. 4.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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