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1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김영수

짱구쌤 2012. 12. 30. 22:08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 김영수 / 왕의 서재]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원문과 번역이 일치하는 줄 모르겠지만 극작가인 영국의 [버나드 쇼]의 묘비명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세기의 천재다운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분명 ‘사마천, ~’ 이 책을 읽으면서 메모해 둔 내용인데 실제 책 속에서는 정작 이 문구를 다시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어디 다른 책에서 본 것을 순간적으로 적어 놓았다는 것인데 도통 떠올릴 수가 없으니. 내참.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고 난 뒤 이 말이 기가 막히게 내 느낌을 잘 나타내 준다고 생각했으니 그것 참..

 

하여간 이 책은 본격적으로 사마천의 [사기]를 읽기 전에 먼저 살펴본 워밍업 책이다. 하지만 분량은 700페이지에 달하는데 300페이지에서 워밍업은 멈췄다. 나머지는 원작 독파를 위해 아껴야 할 것 같아서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중국고전 제일통 김영수님은 마치 수능 대비 고교 세계사 문제집 한 권 같은 분위기로 130권에 달한다는 [史記]를 잘 압축해 놓았다. 번역된 [史記]가 1500쪽 이상은 되기에 지레 겁먹고 잡은 책이다. 삼국지 세 번은 읽어야 인생을 논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감언에 속아 얼추 그만큼 읽었으나 아직까지 인생살이 방식은 헤매고만 있으니 “삼국지 10번 보다는 사기 1번 제대로 읽는 것이 진짜 인생 공부다”는 저자의 일갈이 어찌 솔깃하지 않을쏘냐?-아, 이리도 가벼운 귀

 

하지만 이제껏 말로만 듣던 [사기]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으니 조만간 읽기는 읽어야 한다. 백이와 숙제 이야기, 항우와 유방의 대결, 진시황과 자객 굴원,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는가?, 참새가 봉황의 뜻을 알리요?,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완벽(完璧), 하자(瑕疵), 단오(端午) 등 익히 알고 있는 많은 것들이 사기에 등장한다. 소설에 가까운 삼국지보다 정사를 근거로 한 [사기]를 많은 분들이 권하는 이유 역시 이러한 방대한 지식의 보고도 한 몫 한다.

 

사마천은 죽음 대신 궁형을 택해 [사기]를 완성했다는 일화로 알려진 불굴의 인물이다. 그답게 가장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의인들이다. 죽음을 넘어선 형가나 굴원, 진승 같은 인물을 자객열전에 묶어 칭송한다. 나 역시 그들의 의협이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진정 부러운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대인들이다. [골계열전]에서 소개한 이들은 우전, 강태공, 육고, 안자 등이다.

그 중 한나라 유방의 책사 육고는 그의 주군 유방이 “나는 세상을 말위에서 얻었어”라며 전장에서 얻은 자신의 권력을 자랑하자, “하지만 말위에서 세상을 다스릴 순 없습니다”(마상득지, 마상치지)라며 유방을 깨우쳤으며, 제나라 안자는 상대국 초나라에 파견되어 초나라왕의 놀림(제나라 출신 도둑을 마무 책망하는 쇼를 연출)에 “제나라에서는 귤이었던 사람이 강을 건너 초나라에 오니 탱자가 되어버렸다” 는 우스개로 위기를 가볍게 모면한다. 정녕 ‘유머는 지혜의 가장 높은 수준에 닿아 있는 경지’라는 저자의 말이 맞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버나드 쇼의 말은 요즘 꼭 나한테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일(가령, 에쓰보드 배우기, 드럼하기, 자전거 여행하기 등)을 못하고 계속 이것 저것 따지고만 있는 나, 뭐든 좀 웃으면서 여유있게 담대하게 즐겁게!!

둘째 녀석이 잠자기 전 “아빠, 내일은 도서관 안가면 안돼?”, “왜?”, “아빠가 가자고 해서 가기는 갔는데 오전, 오후 두 번이나 너무 오래 있었어”, “그래, 내일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래도 내일 분명히 또 따라올 거다. “동현아, 잘 자라.”

2011. 8. 1.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