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2정재승 진중권의 크로스-정재승

짱구쌤 2012. 12. 30. 22:09

 

 

 

 

인문학이 밥 잘 먹여준다

[ 크로스 / 정재승+진중권 / 웅진 ]

 

HUM 222-ㅇ725ㅇ,

며칠 째 검색해서 서가로 찾아가면 책이 없다. 분명 대출중인 것도 아닌데, 조금 이상한 것은 HUM인데. 할 수 없이 사서샘께 물어보니 “네, 저기 따로 마련된 인문학 서가입니다.”, “아! human~ 인문과학” 인문학 서가에 가보니 그동안 못 찾았던 책이 수두룩하다. 도서 분류법으로는 분류되지 않은 인문학을 이렇게 따로 해 놓은 도서관 사람들의 안목에 다시 사서선생님을 보았다.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한다. ~하는 법, ~경영 등 자기계발로 대표되는 실용서 중심의 도서시장으로 인해 인문학이 점점 발붙일 곳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인문학이 밥 먹여주냐?”다. 천박하다.

 

정재승은 오래 전 텔레비전 책읽기 프로그램의 패널로 나올 때부터 유심히 보아온 카이스트 교수, 아들도 좋아하는 여러 가지 과학책을 쉽게 풀어 쓰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과학자이다. 진중권, 가장 강력한 진보논객, 본디 미학을 전공하였으나 우리 시대 전방위 지식인으로 강연과 저술활동으로 치자면 대학원 서울대 교수쯤 해야하지만 석사라고 겸임교수 직에서 쫒겨난(실상은 보수눈에는 가시라서) 보따리 장사(본인 표현). 이 두 사람이 스타벅스부터 생수와 파울 클레에 이르기까지 현재를 대표하는 여러 트랜드를 미학과 과학의 시각으로 분석한다. 요리로는 퓨전, 학문적으로는 좀 어렵게 통섭((通涉). 학문간의 교류 쯤 되겠다

아무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글을 쓰는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창조성과 상상력. 아래의 목차를 보면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참 재미있는 주제이며 내용은 더욱 새롭다. [한겨레21]에서 연재할 때 한 반틈 정도는 읽어 보았는데 새로 읽은 것 같다. 초기증세?

 

1. 입맛으로 나, 우리, 그들을 구별하는 세상 : 스타벅스 2. 디지털 세상, 어떤 사람이 구루가 되는가 : 스티브 잡스 3. 검색을 잘하면 지능도 발달할까 : 구글 4. 미래를 예측한다는 위험한 욕망 : 마이너리티 리포트 5. 캔버스 위 예술가와 실험실의 과학자 사이 : 제프리 쇼 6. 소년공상만화가 감추고 있는 그 무엇 : 20세기 소년 7. 다음 세기에도 사랑받을 그녀들의 분홍 고양이 : 헬로 키티 8. 기술은 끊임없이 자아도취를 향한다 : 셀카 9. 왜 눈 위의 작은 선 하나가 그토록 중요한가 : 쌍꺼풀 수술 10. 아름다움도, 도덕도 스스로 창조하라 : 앤절리나 졸리 11. 악마도 매혹시킨 스타일 : 프라다 12. 마시는 물에도 산 것과 죽은 것을 구별하는 이유 : 생수 13. 나는 모든 것을 다 보고 싶다 : 몰래카메라 14. 웃음, 열등한 이들의 또다른 존재 증명 : 개그콘서트 15. 끼와 재능도 경영하는 시대 : 강호동 vs 유재석 16. 그곳에서는 정말 다른 인생이 가능할까 : 세컨드 라이프 17. 집단 최면의 시간 : 9시 뉴스 18. 작게 쪼갤수록 무한 확장하는 상상력 : 레고 19. 사이버의 민주주의를 실험하다 : 위키피디아 20. 예술의 경계가 무너지다 : 파울 클레 21. 지식의 증명서? 혹은 사람의 가격? : 박사

 

물론 위의 내용을 잘 모른다고 해서 밥을 굶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잘 안다고 해서 밥을 더 잘 먹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어디 한 가지라도 인문학과 관련되지 않은 것이 없을 만큼 인문학은 우리 삶과 직접적이다. 시각은 넓어지고 삶을 대하는 방식은 여유로워진다.

 

흥미로웠던 것은 창조성에 대한 것이다. 흔히 창의적인 사람하면, 번뜩이는 생각,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등을 쏟아내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데 저자들은 21세기 창의적인 사람을 설명하면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구글, 스타벅스의 창시자들에서 발견되는 개성적인 통찰력, 복잡한 문제의 본질을 남다르게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 황당한 아이디어를 현실가능한 아이디어가 되도록 구체화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정의한다. 일반적인 창업이나 신상품 마케팅에 필수적인 시장조사와 관련해서 스티브 잡스는 “시장조사는 하지 않는다. 벨이 전화기를 발명할 때 시장조사를 했는가? 내가 바라는 것은 혁신이다.”라고 말한다. 그 동안의 검색엔진이 정보를 분류했다면 구글은 정보를 링크한다. 가장 많은 페이지뷰를 보인 정보에 링크하는 방식을 통해 최고의 기업을 이루면서도 정작 메인에서는 광고화면을 허용하지 않는 경영 철학을 보인다. 대신 노출 빈도에 따른 광고비를 거둔다. 혁신이다. 모든 커피점이 상품을 판다면 스타벅스는 문화를 판다. 사용가치가 아니라 기호가치를 판매하고 대중은 상품과 상품 사이의 차이를 소비한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방해하는 매혹적인 4인방이 있다. 술, 골프, 수많은 자문위원회, 그리고 텔레비전이란다.(정재승님의 주장) 그렇다면 교사들의 가르침을 방해하는 매혹적인 4인방은 무엇이 될까? 술, 배구까지는 생각해 냈는데 그 다음은 모르겠다. 누구 아는 사람?

위키피디아의 Wiki가 What I know of it? 이라는 것과 그것이 집단 지성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았다.

 

진중권은 대단하다. 이 시대의 논객이자 토론 종결자이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다. 그의 거친 독설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그것을 듣는 사람이 “참 기분 나쁘겠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거침없고 직설적이다. 그래서 심심찮게 뉴스에 오르는데 정작 본인은 그것에 초연하다. 너무 부러운 高手다. 하지만 닮고 싶지는 않다.(웬 이율배반?)

정재승은 닮고 싶은 점이 많다. 그가 정색하고 ‘대학원생들이 왜 박사를 받으려고 연구하는 걸까?’라는 물음에 “우주와 자연과 생명과 의식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평생 탐구하는 삶이 가장 고귀하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답할 때 나는 그를 존경하기로 했다.

2011. 8. 2.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