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30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짱구쌤 2012. 12. 30. 19:42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박민규 / 한겨레]

 

순전히 어제 빌려 논 책 때문이다. 손에 드는 것이 아닌데.. 마흔 네 살에겐 확실히 무리인 무박2일의 노숙은 무한정의 잠만이 유일한 피로회복제인데, 글쎄 샤워 뒤에 오는 상쾌함을 몸의 빠른 회복으로 착각해 겁 없이 이 책을 집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특히 나처럼 푹신한 소파에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프로야구 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이 절실한 희망사항인 경우) 삼미슈퍼스타즈는 묘한 떨림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82년 창단되고 85년 삼미팀이 해체될 때까지 한국 프로야구의 전대 미문의 기록을 갱신한 이 팀은 항상 꼴찌하는 팀으로 각인되어 있다. 팀 최다 18연패, 한시즌 특정팀에 대한 전패, 최다 이닝 실점, 최소 득점, 최소 타율, 한 시즌 최소승(5승), 최저 승률(1할 2푼 5리)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대기록(?)이 모두 삼미슈퍼스타즈의 역사적 산물이다. 그런데 이 팀에 팬클럽이라니?

 

이야기는 인천을 고향으로 하는 중학생 주인공이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팬클럽회원이 되어 삼미와 영욕(?)을 나누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경쾌한 소설이다. 한 번 잡으면 절대 놓을 수 없는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문체와 리듬 있는 템포는 몇 범이나 웃음 지으며 진도를 빼게 하는 강력한 장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만 마무르면 2% 부족한 뭐 그렇고 그런 이야기지만 이 젊은 작가(이 글을 쓸 당시 32세)는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통해 너무도 일상화 되어 이제는 문제제기조차 하지 않는 당연한 ‘현대인들의 쳇바퀴’ 와 ‘강요당하는 프로다움’을 비튼다. 프로야구 어린이 팬클럽이 선망의 대상이었던 나 역시 프로야구 해태의 열렬한 팬이었다. 작품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해태는 너무도 잘나가는 명문 팀이었지만 삼미는 이기는 방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늘 지는 꼴찌팀 이었기에 주인공은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간다. 절망과 염세를 경험한 애 늙은이.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삼미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독특하긴 하지만. 기대 속에서 절망하고 미련은 남았지만 외면하며 서서히 삼미는 잊혀져간다. 주인공은 고등학교 대학교에 들어가고 그렇고 그런 연애도 하고, 사람들과 관계도 맺고, 결혼하고 취직하고 실직까지(너무나 익숙한) 당한다. 물론 삼미슈퍼스타즈는 까맣게 잊고서. 삼미슈퍼스타즈가 잘못한 유일한 점은 아마츄어가 프로에 너무 일찍 뛰어들었다는 것이라는 친구 상훈이의 말처럼 우리 모두가 어설픈 프로 논리에 갇혀 질 자유, 조금 쉴 자유, 한눈 팔 자유를 잃어버렸다고 작가는 고백한다. 20년이 지나고 다시 결성한 팬클럽, 당당하게 지고 힘 빼고 살살하자는 그들의 작은 외침이 많은 이들을 울렸다.

 

한겨레문학상에 빛나는 박민규의 작품을 이번 방학 중에 다 읽어볼 작정이다. 문학상의 심사위원인 황석영, 박범신, 임헌영 선생의 공통된 찬사는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게 하는 강력한 기준이다. “이처럼 유쾌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도 일상적 소중함과 향기로운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는 작가” 박민규를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이유이다.

 

타이거즈의 승패가 그날 기분의 약간을 좌우할 정도로 나는 지금도 프로야구의 열렬한 팬이다. 아들 녀석도 그렇다. 하지만 아들 녀석이 워낙 TV를 좋아한다는(좋아할 거라는) 예단 때문에 마음 놓고 중계를 보지 못하고 인터넷 중계만 간간히 확인한다. 중계 보는 것도 좋고 캐치볼 하는 것도 좋아한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삼미의 정신, 삼미팬들의 철학이 수양이 덜된 나에게는 아직 먼 철학일지라도 나에게 “야구 시청의 자유를 許하라!”

 

2011. 7. 31.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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