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7낯익은 세상-황석영

짱구쌤 2012. 12. 30. 19:36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거냐?

<낯익은 세상 / 황석영 / 문학동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읽은 책, 장발족(?) 삼부자가 동네 미용실에서 시원하게 컷트 하고 곧장 달려간 도서관에서 진즉 사 놓고 못 본 황작가의 이 책을 두 시간 만에 읽었다. 작가의 여느 작품처럼 한 번 들면 좀처럼 내려놓을 수 없이 빠져드는 이야기의 마력이 그대로 있었다. 시원한 도서관 소파에서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었다.

 

이야기는 서울 난지도쯤 되는 ‘꽃섬’이 배경이다. 폐지나 재활용품을 분류하며 사는 이들이 사는 시기는 삼청교육대, 게임기 수퍼마리오나 테트리스로 미루어 보건데 80년대 초엽이다. 도심 변두리 산동네에서 살던 14살 딱부리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든 쓰레기 매립장 ‘꽃섬’에서 그곳 반장 가족(땜통과 그의 아빠)가 동거하면서 사는 풍경이 이야기의 뼈대가 된다.

 

세계 어느 도시건 중심부와 그의 주변부가 있게 마련이듯 화려한 생산과 소비 뒤에 따르는 뒷처리(혹은 배설)는 욕망의 뒤끝이 그렇듯 우중충하고 측은하다. 뻔하다 싶은 도시빈민의 이야기가 재미와 색다름을 주는 것은 순전히 작가가 가져다 쓴 판타지 장치 때문만은 아니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으면 절대 쓸 수 없는 노동과 삶의 구체적 현장이 참 실감나게 구현되었다. 너저분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치열성, 외면하고 싶지만 들여다 보아야만 할 것 같은 진정성은 작가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다. 현.장.성.

난 김수철의 소금 연주곡 ‘꽃의 동화’를 배경음악으로 찍은 영화 ‘축제’나 작가의 전작 ‘바리데기’같은 동화적 장치를 좋아한다. 죽음에 이르는 노인의 삶을 예쁜 손녀의 성장으로 치환하는 축제의 그 만화적 상상력이나, 탈북 처녀가 겪었을 수많은 고통을 진흙탕 속에서 핀 연꽃 심청의 아름다운 환생으로 그린 ‘바리데기’는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반지의 제왕이나 헤리포터와 같은 판타지는 사양이다. 정복하고 폭력하는 환타지 말고 말하자면 착한, 동화 같은 환타지..

 

현실의 어두움과 절망을 두 소년 딱부리와 땜통은 어른들 눈에는 보이지 않은 정령(도깨비)과의 만남으로 잊는다.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왔을 때부터라는 작가의 말처럼 꽃섬에 난지도가 들어서기 전에 존재했던 김서방네 마을은 이제 아이들 눈에만 보이는 정령들의 세상이다. 접신 들린 빼빼아줌마와 함께 그들을 위로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아이들이 정령들의 막내와 나눈 대화는 인상적이다.

“너희 동네는 어디니”

“저기, 우리는 항상 너희들 옆에 있어"

우리들 모두가 여기까지 달려와서 만든 세상이기에 너무나 익숙한 풍경들, 지옥이나 천국이 아닌 지척의 세상, 낯익은 세상.

꽃섬에 불이 나고 땜통은 죽는다. 딱부리는 그들만의 비밀기지에서 가만히 옆에 앉은 땜통의 정령을 만난다. 김서방네 정령들이 곳간에 잔뜩 쌓아둔 꽃씨들이 불타버린 꽃섬의 상처를 덮는다.

 

작가는 “우리 속의 정령을 불러내어 그이들의 마음으로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거장이 잘 어울리는 황석영 작가는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자주 위로한다. ‘오래된 정원’과 ‘개밥바라기별’은 열심히 달려왔으나 허망할지도 모를 뭇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건넸다. 수고 많았다고. 그 노고 어디 가지 않을 거라고. 그 무슨 큰 힘이 되겠냐마는 나도 작가에게 위로를 보낸다. “애 쓰셨습니다.”

 

2011. 7. 27.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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