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4이스탄불-오르한 파묵

짱구쌤 2012. 12. 30. 19:29

 

 

불행이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다

[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 / 오르한 파묵 / 민음사 ]

 

 

오르한 파묵, 이름도 생소한 이 작가의 작품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얼마 전 터키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영화감독 장진의 추천사가 더해졌다. 2006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저자는 터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이다. 이스탄불에서 나고 자라, 오직 이스탄불만을 노래한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작가가 되었다. 스스로 문학의 변방(“나는 한 번도 중심부에 있지 않았습니다.”)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 파묵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모태와 같은 이스탄불을 담담히 이야기한다.

 

과거 세계의 중심이었던 오스만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콘스탄디노플)은 지금의 뉴욕이나 파리를 능가하는 전성기가 있었다. 이스탄불을 가보면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다. 성소피아성당, 블루모스크 등 도시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이슬람 사원, 바닷가를 빙 둘러싼 오래된 성벽과 목재 별장들은 지난 날 이 도시가 누렸을 영화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방문자들은 이스탄불이 과거에 비해 점점 쇠락해가며 변하는 모습에 깊은 상념(파묵은 ‘비애’라고 표현)에 젖는다. [이스탄불]은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 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쭉 살고 있는 자신의 집에 대한 이야기, 가족들, 특히 부모님과의 갈등, 첫사랑의 아픔 등 개인사에 얽힌 이야기가 얼개가 되고 당시의 사회상이 세밀한 묘사로 서사를 이룬다. 이 도시가 지나온 역사(신문 기사, 중요 유명 방문자의 회상, 주변인들의 기억, 작가 자신의 추억)를 가감 없이 날것 그대로를 보여준다. 숨기고 싶을 만도 한 자신의 열등과 은밀함도 작가에게는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나하고는 아무 관련도 없을 것 같은 이국 도시의 이야기가 오늘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도시, 그리고 거기에서 사는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없는 추락을 거듭하는 이스탄불을, 작가는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기록한다. 새로운 것에 자리를 내주는 비루함, 옛 것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지금 자신들에 대한 한탄은 읽는 내내 안타까웠다. 너무도 허망하고 빠르게 허물어져 가는-너무 빠르게 새로워져 가는- 이스탄불의 소멸에 대한 저항의 기록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마지막 36장에서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 다른 물건들을 얻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폐허들을 보기 위해 나는 그곳에서 멀어져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라고 밝히며 자신과 자신의 도시를 혐오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내내 떠나지 않았던 것은 이상한 ‘처연함’ 이었다. 옛 영화와 오늘의 쇠락 사이에 나는 무엇을 보러 여기에 왔는가? 유럽과 아시아 두 대륙에 걸쳐있는 이스탄불을 떠나오던 날 그것을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유람선으로 돌았다. 청춘을 이곳 이스탄불에 바쳤다던 가이드 여선생님은 이것 저것 물어보는 일행에게 짧은 대답 뒤로 먼 곳을 응시하며 ‘그냥 느껴보시라“고 했다. 당시는 조금 의아했었는데 정말 그녀 말대로 해변에 줄지어선 고금의 저택과 지금은 폐허지만 선명한 성곽을 보면서 어느 때보다 이스탄불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대작가의 이 작품을 읽고 왔었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다행이다. 그랬다면 너무 차분(?)했을테니까.

 

조금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지루했지만 그래도 가끔 알만한 장소들에 대한 사진과 묘사는 일주일 정도의 긴 독서를 지탱한 끈이었다. 터키어를 전공한 역자의 번역을 칭찬한 추천사처럼 문체는 유려했고 호흡은 편안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공감되는 것은 번역자의 이 책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는 행복하게 자신의 삶에 대해서, 도시에 대해서, 고향에 대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과 경험 속의 존재들에 대해서 사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스탄불의 그 분은 잘 있을까?

 

2011. 7월 16일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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