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1그리스인 조르바

짱구쌤 2012. 12. 30. 18:19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노벨문학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면서도 정작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리스도를 모멸했다는 이유로 파면당해 사후 그리스 본토에 묻히지 못하고 크레타 섬에 정착한 작가의 묘비명이다. 살아있을 때 만들어 놓은 유언이자 묘비명이다. 거장답다.


1956년부터 세계적 베스트셀러였던 이 작품을 나는 2011년 조국교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으니 부끄러움을 넘어 그간 나를 둘러싼, 아니 내가 경험하는 세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쉽게 말해 “우물안 개구리” 그래도 다행이다. 이제라도 읽게 되었으니. 전에는 경계하였으나 이제는 그 진정성으로 존경하게 된 조국교수의 추천사를 그대로 옮긴다.


이성와 합리와 도덕의 간판을 건 현대 콘크리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뱃속 깊이 묻혀 있는 그 무엇을 불러일으킨다. 자유로운 영혼이 되기는 쉽지 않지만, 이를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붓다와 니체, 조르바를 존경한다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실존 인물인 조르바(지금도 불가리아에 그의 손녀가 살아있다)를 통해 영혼과 육체가 일치하는 완벽한 인간상을 이야기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의 완벽한 인간과는 다른 흠결 많은 인간, 숨결이 있고 땀 냄새가 있는 인간, 머리로 살지 않고 손과 발, 관계로 사는 인간, 호쾌하고 농탕한 자유인 조르바가 펼치는 영혼의 투쟁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그려냈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안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본문 중 조르바의 말


일체의 도덕적 불문에서 자유로운 조르바는 머리로 사는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터키를 방문했을 때 에게해와 크레타 섬의 건너편에서 경치와 감상에만 젖어 맥주 한 잔을 기울였는데 이 책을 읽고 갔더라면 훨씬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 거란 아쉬움이 든다.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정작 당시 그리스인들에게는 크게 환영받지 못한다. 저자는 그리스인의 민족주의를 비웃는다. 그리스 정교회에서 파면당했음을 상징하는 저자의 크레타 섬 나무십자가 무덤, 나도 조국교수처럼 언젠가는 크레타 섬에 가보고 싶다. 세계적인 구제금융 속에 접어든 그리스의 수많은 조르바를 눈으로 보고 싶다.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난 이 책에서 중요한 것을 얻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줄 수 없다. 읽어 본 사람만이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으리라. 어릴 적 유치하게 놀던 암호 놀이다. 그것이 즐겁다.


2011. 6. 28.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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