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2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짱구쌤 2012. 12. 30. 19:21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분노하라 / 스테판 에셀 / 돌베개]

이번에도 형님께 택배를 받았다. 책, 한약, 아이들 학습만화 등은 자주 받았지만 이번에는 좀 특별했다. “소맥컵”과 [분노하라] 책 한 권. 소맥컵이 나왔다는 말은 들었으나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형님이 촌스런 동생을 교화시켜 주신다. 조만간 시음해 봐야겠다. 그리고 아주 얇은 책 한 권.

스테판 에셀, 1917년생이니 우리나이 95세, 생존해 있는 것도 대단한 이 노인이 지금 쓴 글이다. 회고록이나 수필이 아닌 격문 “분노하라!” 본문은 30쪽 가량 되는데 책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얇은 팸플렛이나 찌라시(?)... 그래서 부담없이 읽어간(실제로는 3일이나 걸렸다.) 책이다.

유대계 독일인이며 프랑스로 건너가 나치 하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했으며 붙잡혀 사형 직전까지 갔고, 이후 외교관이 되어 세계인권선언문 초안 작성에도 관여한 이 노전사가 앞으로 살아갈 다음 세대에게 호소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대량소비, 약자에 대한 멸시, 문화에 대한 경시(輕視), 일반화된 망각증, 만인의 만인에 대환 지나친 경쟁만을 앞날의 지평으로 제시하는 대중 언론매체에 맞서는 진정한 평화적 봉기를”


1944년 레지스탕스 평의회가 채택한 자유 프랑스가 지켜가야 할 원칙이 서서히 무너져 가고 있음에 분노한 노전사는 다시금 그 원칙을 확인한다.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방도는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늙고 병든 노동자들이 인간답게 삶을 마칠 수 있게 해주는 퇴직연금제도

-공동 노동의 결실인 대표적 생산수단(에너지원, 지하자원, 보험회사, 거대 은행들)을 국가로 복귀시키는 것

-경제계,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를 포함한 진정한 경제적, 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언론의 자유, 언론의 명예, 그리고 국가, 금권, 외세로부터 언론의 독립

-어떤 차별도 없이 프랑스의 모든 어린이가 가장 발전된 교육의 혜택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프랑스를 있게 한 개혁의 원칙이다. 30여년 전 프랑스로 망명한 코리아의 한 택시운전사(홍세화)가 이역만리 그곳에서 아무런 차별 없이 자녀를 대학까지 무료로 교육시키며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원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프랑스도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점점 레지스탕스가 이룬 빛나는 성취를 무너뜨리는 현실에 저자는 분노한다. 레지스탕스의 동기, 그것은 분노였음을 잊지 말라고, 그것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라고.

프랑스보다 훨씬 분노할 것이 많은 우리에게 남 일처럼 들리지 않는다. 사실 내가 가장 공감한 부분은 ‘격분’이다. 테러리스트의 폭력은 ‘격분’에서 나온다. 약자가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 분노인 폭력적 저항은 격분에 근거한다. ‘도에 넘치는 분노’인 격분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긍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경우에, 격분 탓으로 그것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한진중공업 크레인에서 180일째 고공농성을 하는 김진숙 님의 저항 방식은 비폭력이다. 고공에서 상추 심어서 가꾸고 책을 보면서 저항한다. 그 어떤 저항보다 위력적이며 희망적이다. 하지만 난 그녀가 무사히 내려오기를 희망한다.

(.....) 사랑은 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가버린다

삶은 어찌 이리 느리며

희망은 어찌 이리 격렬한가!(.....)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시인은 흐르는 강물위에서 생과 사랑의 무상함을 노래했지만 온 몸으로 역사를 살아온 노전사는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청년이다. 점점 늙어가는 나도 그러고 싶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라고 이 글을 끝난다.

-2011. 7. 5.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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