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23반고흐,영혼의 편지-반고흐

짱구쌤 2012. 12. 30. 19:27

 

 

 

소박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림

[반고흐, 영혼의 편지 / 빈센트 반 고흐 / 예담]

 

 

사실 난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학교 다닐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고 한 번도 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대학 때 딱 한 번 어느 교수님께 수묵채색화 한 점이 눈에 띄어 대동제 때 전시 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나에게도 그리는 소질이 있나?’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내게 미술은 두려움이다.


 

하지만 그림을 보는 것은 즐겁다. 장르나 형식은 아는 바 없지만 그림이 주는 느낌이 좋다. 즐겨 읽던 책의 저자인 미술학자 오주석 님 때문에 우리 옛 그림에 대해 다소나마 알게 되었고 유화나 수채화도 오래 보고 있으면 그림이 주는 무언의 메시지가 오래 남는다. 거실에 오래 전 집사람이 사온 수채화 한 점이 있는데(아직까지 가격은 모른다)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우리 집의 일부처럼 편안하다. 그림을 무슨 살만한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생각해 온 나로서는 사치스러운(?) 그 그림이 내심 못마땅했는데 요즘은 옷이나 가구보다 그림을 높게 산 집사람의 안목에 놀라고 있다.


이 정도 그림 초심자인 나에게 고흐는 잘 다가오지 않은 화가였다. 거친 붓 터치, 다소 촌스러운 원색, 거기에 귀를 자른 기행에 자살까지.. 도무지 편안함과는 거리가 먼 그가 내게 들어온 것은 순전히 외부의 자극이다. 전에 읽은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에서 저자가 사랑한 아를, 그리고 거기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고흐를 접했는데 그 후로 그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차에 김용택 선생님의 책에서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편지(사실 프로방스의 저자도 아를에서 그 책을 늘 읽고 잠들었다고 했다)를 추천했기에 읽게 되었다. 고흐는 평생 고독과 싸운 불행한 작가다. 가족들로부터는 종교상의 차이와 그의 무능함으로 배척당했으며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단 한번 임신한 매춘부 시엔과 잠깐 동안 함께 산 적은 있지만, 살았다기보다는 돌봐 준)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았(겨우 400프랑, 그것도 동생의 눈물겨운 노력으로)을 만큼 무명작가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오늘날 가장 비싼 가격(닥터 가세. 972억원)에 팔리는 그림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그를 정신병자라며 추방한 프로방스의 ‘아를’ 지역을 고흐 덕분에 먹고 살게 하는 최고의 화가가 되었으니 가난한 예술가의 극적인 역전드라마라 하기에는 생은 너무 가혹하다. 이 책은 고흐가 평생 그의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모음이다. 가끔 테오의 답장이나 고갱과 어머니,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도 있지만 그것도 테오에게 보낸 편지을 잘 알리기 위한 장치다. 이 편지를 읽다보면 천재, 광인, 순교자 등 그에게 붙여진 수많은 수식어가 허무하다. 그는 노력하고 방황한 순박한 화가였다. 그를 늘 응원하고 평생 경제적으로 후원한 동생 테오는 역사상 그 어떤 인물보다 경이롭다. 이 책은 고흐의 이야기이면서 테오의 이야기다. 고흐가 고통스러운 생을 스스로 마감하고 6개월 후 동생은 급격히 몸이 약해져 33세의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리고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형의 곁에 잠든다. 가족과의 불화, 세상과의 불화, 동료 고갱과의 불화, 시대와의 불화 속에 귀를 자르고, 외국 용병으로 입대하겠다는 형의 고뇌에 동생은 무한한 신뢰로 지원한다. 평생 경제적 후원을 받은 동생에게 보답할 길이 없자 고흐는 “그림을 팔아서 갚지 못한다면 내 영혼을 주겠다”고 절규한다. 동생은 “이미 형은 삶으로, 그림으로 나를 충만케 했으니 그런 마음을 갖지 말라”고 위로한다. 그들의 형제애가 부럽다. 내게도 테오같은 형님이 계신다.


내 오랜 친구 중에 고흐를 닮은 이가 있다. 이용인, 인상도 그렇거니와 스무살이 넘어 처음 그림을 그린 이력이나 그 천재성(내가 보기에는)도 비슷하다. 그가 그린 작품을 정말 영화처럼 만난 적이 있다. 25년 전, 금남로를 걸어가며 거리에 전시된 많은 작품 들 중 유독 내 눈길을 잡는 그림 한 점(푸른 바탕에 아이가 주인공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내 친구 이용인의 작품이었다. 내 친구는 지금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 늦은 결혼에 아이 키우는 재미 때문인지. 시대와의 불화로 생긴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인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다. 친구에게 이 책을 선물할 까 한다. 그가 다시 붓을 잡고 희망을 그렸으면 좋겠다. 아를의 작은 방에서 아무도 주목해주지 않은 그곳에서 고흐는 진지하고 처절하게 그림을 그린다. 고흐의 작품이 많은 이에게 사랑 받는 것은(난 미학적인 관점에서 평론할지 모른다) 그가 쓴 편지 덕분이라고 난 생각한다. 터치 하나 하나에 서린 그의 철학과 고민, 열정과 영혼이 버무러진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편지와 그림에 남아 있다. 그것을 느끼고 본 것이다. 나처럼 많은 이들이..


사실 난 이런 책이 좋다. 내가 몸담고 활동하는 대부분의 담론은 분석적이며 저항적이며 행동적이다. 하지만 난 오래 전부터 그것이 가져올 편향에 대해 걱정하였다. 하여 책읽기만은 깊이와 여백과 사색의 자양분으로 내 삶의 균형추가 되기를 바랬다.


[소박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림]. 고흐가 바라던 그림이다. 자신의 그림이 천문학적인 거금이 된 것을 안다면 그는 행복해 할까? 그는 거창한 전시회 보다는 소박한 사람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밀레의 그림처럼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림이나 복제화를 자기 집에 걸어둘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거실 벽면 한쪽을 오래전부터 비워두었다. 마땅한 그림을 찾고 있었는데 고흐의 복제화를 선택했다. 프로방스의 불타는 밀밭이나 사이프러스 풍경, 아를의 카페테라스나 별이 빛나는 밤 등 그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끝없는 붓질로 완성했을(비록 복제화일망정) 그림 한 점을 걸고 싶다.


지금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 시간, 담임은 감독하지 말라는 친절한 행정 지시 덕에 난 교담 교실에서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어젯밤 읽었던 이 책의 잔상을 정리한다. 답답해야 할 시간이 오히려 헐겁다. 삶이 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2011. 7. 12. 이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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