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7스님은 사춘기-명진

짱구쌤 2012. 12. 30. 18:12

 

 

“마음에서 힘을 빼라!”

[스님은 사춘기 / 명진 / 이솔]

“이는 마음을 비우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모든 고정관념, 오랫동안 익혀온 지식과 정보, 길들여져 있던 습관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다.”

 

표지와 제목을 보고 고른 책이다. 눈덮인 밤길 거닐 때 함부로 걷지 말라던 경구를 외우고 살았었는데 웬걸, 스님은 장난꾸러기 시범이라도 보이듯 천진하게 뜀뛰기를 하신다. 제목도 “스님은 사춘기”. 뭐가 그리 엄숙하냐고 슬쩍 눙치듯 말을 거는 데야 당해낼 수가 없다.

 

명진 스님은 이미 유명인이다. 작년 집권여당의 대표와 벌인 좌파논쟁에서 내가 보기엔 스님의 완승이었다. 조계종 산하 수백 개 사찰 중 시줏돈 5위 안에 드는 강남 부자 절에 사사건건 정부에 시비 거는 주지가 있었으니 여당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였으리라. 그래서 시비를 걸었는데 보기 좋게 KO패. 알고 보니 그 운동권 주지스님은 시주함(불전함)의 열쇠를 아예 신도들에게 맡기고 일절 재정에는 관여하지 않은 청빈함에, 1,000일간 절간 밖에 나가지 않고(단 한 번 노무현대통령 추도식을 제외하고는) 매일 1,080배를 하며 오직 수행에만 정진하는 철저함을 보여 부자신도들의 ‘젊은오빠 스님“으로 등극하였으니 어찌 *묻은 그들이 당해낼 수 있으랴.

 

내심 그 통쾌한 일갈을 듣고자 고른 책이었으나 보기 좋게 예상은 빗나가고 운동권의 냄새조차 풍기지 않으시고 수행 이야기만 하셨는데 나는 그것이 더 좋았다. 그 어떤 시국연설이나 정치담론보다 깊이 있는 울림을 받았다. 아주 어려서 엄마를 잃고, 사랑하는 동생을 군에서 잃고 세상 모든 고통을 한 몸에 진 듯 힘겨워하는 ‘인간 명진’의 수행기는 그것으로 큰 가르침이었다. 막 출가했을 때 만난 성철 큰스님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범문을 여쭙던 기개나, 영양실조로 병단 도반을 위해 절집에서 소머리를 삶아 병을 고친 일(그때 주지스님이 그의 행동을 꾸짖자, “그럼 스님의 머리를 삶을까요?”), 논쟁의 한복판에서 훌훌 털고 바랑 하나 메고 봉은사 주지를 박차고 산사 암자로 들어간 일은 참으로 통쾌하다.

 

대학 1년 때 엉겹결에 들어간 불교학생회 여름 수련회 때 불갑사 주지스님께 “法泉” 수계를 받았다. 그 시절 지선 스님 시국 법문 들이러 다닌 재미로 잠시 불자였으나 그 후 한 번도 불교를 나의 종교로 생각해 본 적 없으나 또한 한 번도 나와 무관한 종교로 생각해 본적도 없었으니 不可近 不可遠 이었다고나 할까? 하나 늘 절집 주위를 배회하며 살았다. 절대 고독과 무한 수행, 무소유와 절제, 닿을 수 없는 수행자의 극한 생활이 기실은 연약한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음을, 자기 찾기였음을 어렴풋이 느꼈다. 나는 누구이며, 왜 사는가? 영겁의 세월 속에 윤회의 삶을 사는 동안 한 번은 반드시 거쳐야할 일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해보라고 다그치신다. 그리 어렵지 않다고 꼬드기면서. 나무관세음보살.

2011. 6. 1.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