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4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정수복

짱구쌤 2012. 12. 30. 18:05

 

 

지금 여기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사는 곳, 프로방스

<프로방스에서의 완전한 휴식 / 정수복 / 문학동네>

 프랑스 남쪽 지방을 일컫는 말 프로방스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읽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별’의 배경으로 익숙하다. 양치기 소년과 주인집 작은 아씨의 사랑이야기가 프로방스의 아름다움을 신비롭게 각인시킨다. 또한 비운의 천재화가 고흐가 생의 마지막을 불태웠던 곳, ‘아를’ 역시 프로방스이며 고흐의 대표작인 ‘해바라기’,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밀밭’은 모두 이곳에서 그린 작품이다. 이 밖에도 ‘마티스’, ‘샤갈’, ‘피카소’, [나무를 심는 사람]의 ‘장 지오노’ 등 숱한 예술가들의 작업의 산실이기도 하다. 무엇이 그들에게 프로방스를 선택하게 했을까? 저자는 프로방스의 자유로움, 신선함, 고요함이 그 열쇠라고 말한다.

 

저자는 프랑스 유학 시절 들렀던 프로방스와의 인연으로 지금은 한국 생활을 접고 10년 간 프랑스에서 생활하며 글쓰기를 통해 사회학을 이야기하는 ‘전문적인’ 산책자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의 몸속에는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통해 새로운 음식, 공기, 사람, 환경을 만나며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때 묻혀있던 자신의 참모습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붙박이 생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현대인인 나 역시 낯선 곳으로 먼 여행을 기대한다. 내내 부러움으로 이 책을 읽었다.

 

저자는 프로방스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가 있다. 나에게는 무위사가 그렇다. 13년을 살았던 영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절집 무위사는 참 편안한 곳이어서 수십 번을 다녔다. 바람 좋을 때, 햇볕 따스할 때, 비올 때, 눈 내일 때, 흐릴 때.. 그때마다 다르게 내 마음을 보듬어 주었던 무위사를 멀리 떠나온 것이 지금 가장 아쉽다. 어디 무위사 뿐이랴.

 

프로방스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평범한 이웃들과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그들의 인생 여정을 소소히 다룬다. 묘하게도 그런 작은 조잘거림이 가슴에 스며들어온다. 결국 이국적인 프로방스에도 너무도 일상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이상적인 사랑과 현실 사이에서의 선택, 이혼, 육아, 노년의 쓸쓸함을 그냥 기록한다. 어느 누구와도 구별되고 싶어 하는 독특한 사회학자인 저자는 그렇게 사회학을 기록한다. 문학과 예술로서의 사회학,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강단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단적 사회학을 고집한다. 급기야 그는 “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인 지식인으로 살아갈 것” 임을 선언한다. 학위를 받고 귀국한 한국에서 전혀 보따리장사 강사를 전전하며 소진되어가는 자신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어 프랑스로 삶의 거처를 바꾼 그는 지금 행복하다. 쓰고 싶은 글 실컷 쓰며 인간답게 살아간다. 나도 나이 들어가니 가장 불편한 것이 주위의 시선이다.

저자는 고흐와 대화한다. 덕분에 고흐와 친해졌다. 잠자기 전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을 바로 그곳 아를에서 읽으며 고독한 예술가 고흐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낮에는 고흐의 정취가 남아 있는 여러 곳(입원한 정신병원, 살았던 하숙집, 거닐던 가로수길, 자살한 밀밭 등)을 찾아다니며 작품과 현장을 비교 중계한다. 액자 속에 굳어있던 그림에 생기가 불어 넣어진다. 스토리가 있는 그림이 보이는 것이다. 진짜 그 덕분에 고흐 그림을 알게되었다. 거실 비어있는 공간에 고흐 그림 한 점 사서 걸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생 ‘테오’다. 평생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아본 적 없는 무일푼 형 빈센트를 위해 동생 테오는 후견인 역할을 자처한다. 생활비를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 형의 예술적 열정을 북돋운다. 예술적 동지인 것이다. 결국 형의 자살 일년 후 시름 시름 앓다 죽은 동생은 지금 형 옆에 다정히 누워 있다.

 

끝없는 밀밭과 올리브 나무, 작열하는 태양과 시원한 바람 미스트랄, 조급증에 빨리 빨리 한국인들에게 프로방스의 휴식을 권한다. 인간다운 낮음과 고요함 그리고 느림이 있는 프로방스, 너무도 멀리 있어 꿈에서나 있을법한 그곳이 어느덧 ‘나의 프로방스’가 되어있다. 진짜 나의 프로방스는 어디일까?

2011. 5. 11.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