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11강남몽-황석영

짱구쌤 2012. 12. 30. 17:51

 

 

황석영의 장편 [장길산], [객지], [삼포가는 길]에서부터 [오래된 정원],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까지 대부분의 작품을 읽었으며 나중에야 그의 기록으로 알려진 광주민중항쟁의 기록 [죽음을 넘어 세대의 어둠을 넘어?]와 북녘을 방문하고 쓴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까지 섭렵했으니 요즘 말로 황석영 매니아 라고 해도 손색없을 터이지만 요즘 황작가의 행보는 어지럽다. 각설하고..

 

이번 작품 [강남몽] 역시 이전의 그것들처럼 재미있게 잘 읽힌다. [황구라]라는 그의 오랜 별칭처럼 술술 풀린 이야기는 끝도 없다. 일반적인 몽류 소설과 다른 점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둔다는 점인데 ‘사람의 역사가 다 꿈이 아닌가?’ 라는 작가의 역서로 제어진 이름일 것이다. 오래 전부터 한 번 써보고 싶었다는 강남개발의 통사, 한국 자본주의의 기형적 발달사는 그의 호언이 지나치지 않을만큼 충분한 사료와 얼개로 짜여 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현장에 있거나 그것을 지켜 본 사람들의 일대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이 책에서 일제 친일파에서 훌륭히(?) 정착한 친미 반공주의자, 6-70년대 이농천도 현상으로 도시로 몰려든 조임금 노동자와 도시빈민, 김태촌, 조양은으로 대표되는 한국 깡패들의 흥망성쇠가 각가의 빛깔로 맛깔나게 살아난다.

 

일제말 40년대부터 1995년 문민정부까지, 만주와 간도에서 재개발 강남까지 시대와 지역을 넘나들며 펼치는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과 인물들의 등장은 그가 아니면 힘들었을 정도로 현란하고 거침없다. 역시 황석영이다.

 

한때 후일담 소설이라 하여 80-90년대 민주화를 추억으로 버무린 정체성 불명, 가치관 혼란의 패배적인 소설과는 격이 다른 그야말로 목적을 갖고 쓴 강남개발사인데, 우리가 어떻게 부와 땅을 이처럼 천박하게 숭상하게 되었는 지(독재 개발주의자들의 치밀하고 치졸한 정책과 통치로 인함), 현재의 재벌과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정권과 결탁하여 성장하였는지 소상히 밝힌 기록물이기도 하다.

 

나 역시 아파트 값과 통장 잔고가 주요 관심사의 하나임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이 남의 양식을 빼앗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아니 그것을 묵인하거나 방조해서는 안된다는 일말의 기준과 지조는 두고 두고 지켜야 함을 생각한다. 17일 만에 마침내 구출되어 언론의 조명을 받았던 당시의 기사처럼 소설 속에서도 백화점 비정규직 여종업원의 최후 구조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힘들게 살지만 정직한 노동으로 삶을 꾸려가는 소시민이 마지막 희망의 근거임을 밝히고 싶어하는 작가의 장치라 믿는다. 나는 지난 대통령 선거와 총선거에서 돈의 위력으로 모든 정책과 양심을 거세하던 기억을 지우지 못한다. 내 아파트 값이 떨어질까봐, 펀드가 깡통이 될까봐, 뉴타운 개발의 콩고물이 나에게서 멀어질까봐 작심하고 투표하던 사람들의 천박함과 이중성을 내내 증오해왔다. 이것이 비단 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그간 누려온 고속성장의 그늘에 기인한 것임을 이 소설은 증언한다.

 

황석영은 정직하며 훌륭한 작가임을 의심치 않는다. 그가 북한을 다녀와서 감옥생활을 할 때 그가 쓴 글을 가슴 설레며 읽었다. 1989년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난 그때 황작가가 나에게 심어준 믿음이 오랫동안 나와 그의 삶을 지탱해 줄거라 생각한다. 그의 건투를 빈다.

2011년 3월 10일 이장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