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8한국의미특강-오주석

짱구쌤 2012. 12. 30. 17:38

 

10월의 마지막 날이라야 여느 날과 다르겠냐마는 그 날짜가 주는 쓸쓸함마저 뭉개지는 못했다. 간만에 좋은 날씨, 아침에 간단히 집청소하고 책꽂이 책을 꺼냈는데 바로 오래전 보았던 바로 이 책이다. 간밤에 읽다가 만 여러 책들이 통 눈에 들어오지 않아 여러 번 읽은 이 책을 다시 잡게 된 것이다. 표지를 넘기자 [2007년 5월. 장규] 라고 휘갈려 쓴 글이 보인다. 아하! 그때 어느 신문에서 명사들의 책 소개가 있었는데 노회찬 당시 민노당 국회의원이 추천한 올해의 책이라 흥미를 가지고 사서 본 것이었지.

 

이틀간의 속독인 셈인데 전에 보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새롭고 재미있었다. 기억력 때문인가? 오주석은 3년전 이 책으로 처음 만난 후 그의 여러 책들을 사거나 빌려서 거의 보았다. 참으로 아까운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의 재능과 열정을 아끼는 많은 이들을 슬프게 했다. 나 또한 너무 늦게 그를 안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가 이 책을 쓴 시기가 2002년 월드컵 직후인데 우리가 4강에 오르고, 그보다 더 놀라운 거리 응원의 모습을 보고 우리 민족이 가진 문화의 힘에 대한 그간의 확신을 가지고 쓴 책이라 느꼈다. 배타적인 국수수의를 혐오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식민사관에 젖은 패배주의나 순응주의도 싫어한다. 이 책은 우리가 가진 문화의 힘을 온당하게 대변하려는 저자의 의지가 잘 나타난 책이다.

 

옛 그림읽기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이야기하며 몇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그림의 크기에 따라 거리를 조정하며 보라.(그림 대각선 크기의 1.5배정도 떨어져서. 크기에 상관없이 일정한 거리에서 같은 패턴으로 그림을 보는 무지함이란..) 둘째, 옛 그림은 세로쓰기의 원칙처럼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보라’(서양 그림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스토리나 구도가 전혀 잡히지 않는다) 셋째. 그림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보라.(그림을 본다는 영어가 I see the painting이 아니라 Look at the painting 인 이유)

 

첫 번째 그림은 너무나 잘 알려진 김홍도의 [씨름도]를 설명했는데 공책 크기의 이 작은 그림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찾아내고 음미하는 지 혀가 내둘러진다. 가끔 아이들과 수업이나 외부 강의에서 이 그림을 가지고 이야기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다들 “와” 탄성을 지른다. 그만큼 익숙한 이 그림에서 조차 우리는 너무 모르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가령 이 그림에서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이 씨름에 사용된 기술은?

2. 어느 쪽으로 넘어질 것인가?

3. 다음 나올 선수는 누구인가?

4. 시간이 오랜 지났다는 증거는?

5. 씨름꾼들의 신분은?

6. 등장하지 않은 인물群은?

7. 잘못 그려진 결정적인 실수는?

8. 양반과 평민이 같이 구경 할 수 있는가?

9. 원근법이 무시된 이유는?

10. 엿장수 소년의 시선이 바깥쪽인 이유?

위 그림은 밑그림도 없이 한 번에 그려 나간 풍속화첩중의 한 점이다. 평민을 대상으로 판매도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저 그런 그림이라지만 놀랍다.

 

다음 그림은 도화서 화원으로서, 당대(아니 이후까지도) 최고의 천재화가 단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작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이다.

 

저자가 세계 제일의 호랑이 그림이라 자랑하는 그림이다. 소나무 아래 호랑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의식한 듯 정면을 향했다. 요즘 보이는 고양이류의 호랑이(아래) 그림과는 사뭇 다르다.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호랑이 특유의 야생성과 맹렬함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다. 빳빳하고 바늘처럼 가는 붓으로 터럭 한올 한올을 수천 번 반족하며 그린 이 그림은 기능면에서 뿐만 아니라 수양이 깊은 사람만이 이룰 수 있는 경지라 칭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그림을 통해 우리 그림보기의 맛과 멋을 보여준다. 특히 인물화(초상화)는 사람 됨됨이 까지 보여주려는 우리 인물화의 전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올 겨울에는 서울 구경 가서 호암미술관(리움)과 중앙박물관에 가서 단원의 그림만 오래도록 보고 올 계획을 세웠다. 그의 특강을 들었으면 참 행복했겠다. 생각했다. 책으로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숨결과 강사의 열정을 느껴보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를 들었을 때의 숨이 멎을 것 같은 감응이 그립다. 그의 특강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어느 팝가수의 노래처럼 ‘세월이 가는 것은 아무렇지 않으나 10월이 가는 것은 슬프다’ 는 10월의 마지막 날.

 

오주석 때문에 슬. 프. 다.